"30번을 더 이야기할 생각이야."
그러면 아이들이 복잡한 표정을 짓습니다.
고마운 것인지 미안한 것인지 자신도 모르고 짓는 표정은 보는 사람에게 확신을 줍니다.
´너는 이것을 결국 알겠구나. ´
진지하다는 것이니까요.
모든 일은 진지한 만큼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해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또 한마디 더 거듭니다.
´아마 5번쯤 틀릴 거야.
몇 번을 틀리고 나서 알게 되느냐는 것이지. ´
이렇게 말하면 다음에는 아이들 성격이 보입니다.
적극적인 아이들은 각오를 하듯 입술에 침을 묻힙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는 달라야지.
내가 틀리나 봐라.
그 힘이 옆에서도 느껴집니다.
차분한 아이들은 눈에 반가운 기운이 돕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주의해서 문제를 풀라는 것이네요.
영어가 어려운 아이들도 나름대로 표현을 합니다.
뭐야, 또 어려운 거라고?
지금까지도 충분히 어려웠단 말이야. 힝.
각자의 처지에 맞게 자기 접시에 덜어 놓는 것을 봅니다.
아이들은 자기 몫을 챙기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어른들이 불만스러워합니다.
´그것도 몰라? ´
저도 그 와중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번에 설명을 끝내겠다는 자세를 지양하는 편입니다.
예전에는 그러려고만 했습니다.
문제를 보면 덤벼들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냐는 식이었습니다.
그것이 다 능력 부족이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여러 번 할 생각으로 상대를 대하면 놀랍게도 편안해집니다.
아이가 몰랐을 때 내가 괜찮아집니다.
내가 평화로우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그것만 전달됩니다.
아이가 웃으면서 또는 미안해하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마지막에는 일부러 말해줍니다.
´또 틀리면 어떡하지?
괜찮아, 나는 친절하니까! ´
그러면 나이가 몇 살이든 다들 웃습니다.
그 말을 책에다 적어놓게 합니다.
´틀린 것들이 나를 돕는다.
내가 틀린 것은 선물이고,
나만 틀린 것은 보물이다. ´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틀리는 일에 예민합니다.
스트레스 받고 어려워하고 피하고 숨기려고 합니다.
아이들 마음에 고속도로가 마구 생겨납니다.
좋은 경치들이 허물어지고 쌩쌩 차들이 달리는 도로가 되어갑니다.
그러고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기도를 합니다.
기도마저 학대의 도구가 되는 순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제자, 특히 어린 제자를 Pupil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문하생이라고 부르는 저 말에는 놀랍게도 ´눈동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를 따르는 사람을 제자라고 부르기 전에 내가 따라가는 내 눈동자를 감아봅니다.
보이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습니다.
나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들이 스승이며 제자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스승이며 제자가 됩니다.
다시 눈을 감아봅니다.
https://youtu.be/3DMQc76Gfz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