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설날

기도의,

by 강물처럼

예년과 다른 설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손님은 찾아오지 않더라도 명절 차례상을 위해 어머니는 부지런히 장을 봐두셨습니다.


세상이 코로나로 시끄러우니까 모이지 말라면서도 마음은 바쁘셨던 거 같습니다.


시금치며 도라지, 고사리 같은 나물이 되어 상에 오를 것들과 홍어도 사서 평소처럼 더 삭혀두실 생각이셨던 듯합니다.


어머니 집에는 사람의 온기 대신 차가운 냉기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설을 앞둔 지난 화요일 밤에 응급실에 실려가셨습니다.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뇌경색 환자가 되어 자꾸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환자가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시부모님과 남편의 밥과 국그릇을 차례상에 올리는 꿈을 꾸실 것만 같습니다.


설도 잊고 자식도 잊고 자신도 잊은 채, 집이 아닌 것 같은 곳에서 나가 집으로 돌아가시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사두신 것들로 어머니 대신 차례상을 차렸지만 생기를 잃은 음식들이었습니다.


사람을 맞이하고 정성이 반질반질 윤이 나서 보기만 해도 즐거웠던 음식들이 아니었습니다.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는 소리가 따라놓은 술잔 속에서 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에는 면회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 괜찮다는 판정을 받아야 무엇을 하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1주일은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고 늘 그렇듯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합니다.





"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 개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마지막 에세이를 뜻 없이 펼쳐 눈에 들어오는 글자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설날 오후를 보냈습니다.





아침 묵상도 멈추고 성경 쓰기도 멈췄습니다.


단 한 사람이 걸렸습니다.


하나의 동아리처럼 반갑게 뭉쳐 지냈던 환자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치유의 기도는 평화의 기도 안에서 물결처럼 일어나고 멀어져 가는 듯합니다.


뒤에 남은 아들이나 남편, 아내, 그분들의 남은 관계들에게서 마지막으로 제가 받은 인사들은 모두 평화였습니다.


저도 평화를 한 번 더 빌었습니다.





어머니 아닌 다른 한 사람이 걸렸습니다.


먹거나 자거나 숨 쉬는 일이 힘들 것을 알기에 읽기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어떤 것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그 사람이 걸려서 다시 이렇게 앉아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일은 그래도 ´평화´라는 생각을 박완서 선생님에게 배웁니다.


어머니 방에는 묵주가 여기저기에 놓여있습니다.


자기를 잃은 어머니를 위해 챙겨 가지고 간 물건이 겨우 ´묵주´였습니다.


어머니는 그 묵주를 알아볼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알아보는 일에도 연연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머니도 못 가본 길을 가보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마르코 8:3





씁쓸하지 않고 괴롭지 않습니다.


아프거나 슬픈 일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괜찮을 것입니다.


그것이 선 善이며 착한 것의 숙명인 것을 압니다.


몸에 든 것들을 몸 밖에 내놓고 비로소 몸이 됩니다.


제가 돕고자 하는 것이 그런 것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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