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당신의 밤하늘을 위해
나의 작은 등불을 끄겠습니다.
오늘도 당신의 별들을 위해
나의 작은 촛불을 끄겠습니다.
- 정호승, 당신에게
내 밖은 밝은데 내 안이 어두우면 쓴맛이 나는 우울이고,
내 안은 밝은데 내 밖이 어두우면 매운맛의 고난입니다.
안과 밖이 모두 어두우면 아무것도 맛볼 수 없는 암흑일 것입니다.
다행히 별은 항상 거기에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바라보는 동안에는 제 자리를 지켜줍니다.
다 꺼져버린 빛일지라도 그림자만 남겨두지 않고 빛을 내어줍니다.
황홀한 마법입니다.
별은 곁을 내어주듯이 저를 반짝거려 누구나 시인이 되게 합니다.
동주의 시에서도, 정호승의 시에서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수많은 시인들의 밭에
빛을 생명수처럼 뿌립니다.
어둠 가운데 빛이며 빛 가운데 어둠입니다.
우울 속에서 고난을 보고 고난 속에서 우울을 향합니다.
작은 것부터 생명 있는 것들은 결국 우주를 닮고 본 적도 없는 진리의 미니어처가 됩니다.
고행이란 짧은 말은 삶이라는 더 짧은 말을 너그럽게 바라볼 줄 알까 싶습니다.
다만 포개지고 얹혀서 업히거나 업고 가는 그림 하나를 상상합니다.
내 안이 밝고 내 밖이 밝아서도 빛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은 신비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아는 순서는 허무하고 소꿉놀이 같아서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늘 머리 위에서 밝은 것이 하늘이었으며 별이나 우리는 그 밝은 놀이터에서 만난 동무들이었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빛줄기가 저기 내리고 있는 어느 날이 우리들 사이에 있었다, 고 쓰는 이야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마르코 1:41
내가 오십이 넘었으니까 선생님은 일흔도 더 넘으셨겠습니다.
"내 삶이 영화 같기를"
그 말을 칠판에 써놓고 수업을 마치던 금요일 오후의 선생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점점 내 앞에 놓인 것들보다 뒤에 지나온 것들이 보고 싶어 져서 난처합니다.
나만 떠나온 것 같아서, 돌아갈 길을 영 잃어버린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내가 써놓을 말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안과 밖을 밝히고 나와 세계를 비추는 그런 말을 찾으면 금방 소식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