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

아침에,

by 강물처럼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 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





가끔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글로 지금의 상황, 생각을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는 저에게 조금 못된 사람입니다.


표현이든 대접이든 그것이 무엇이 됐든 타인에게 하는 것과 자신에게 하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애정이었는지 자책이었는지도 모를 무심함이 저와 저 자신을 이끌었습니다.


이쯤에서 돌이켜 보니 나 같은 사람을 나는 만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저를 높이겠다는 뜻이 아니고 일종의 신세타령 같은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박완서 선생님의 고운 문장과 결을 같이하는 말입니다.


저 위에 보이는 폐 閉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박힙니다.


문을 닫을 때 쓰는 글자입니다.


자기의 문을 닫아보신 적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문에 따라 그 내용이나 형식이 철저하게 달라질 거라고도 생각합니다.


그럴 때가 있습니다.


겨우 있는 문 하나를 열어두지 못하고 닫아걸고 깊이 잠겨 들고 마는 때.


사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고 신산스러웠으면 평화처럼 흐르는 글을 쓰는 선생님마저 ´유혹´이라고 했을까 싶으니까,


저 같은 사람은 오히려 대견하게 보입니다.





아이러니처럼 보이는 것이 인생인지, 아이러니 자체가 인생인지 저에게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 사는가의 물음은 언제나 행복이 있는 쪽으로 답이 향합니다.


행복에 대한 정의가 어쩌면 너무 무르거나 투박한 탓일까요.


머리는 그쪽으로 향해 있으면서 다른 것들이 한자리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입니다.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초조하고 답답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자라면 원망이 되고 그 원망은 한 恨처럼 쌓여 슬픔이 되기도 합니다.


알면서 틀리는 일, 눈으로 본 것과 내 발이 밟고 지나는 현실이 다른 것을 아이러니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잘 걷기 어려운 듯합니다.


본 대로 걷지 않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차이만큼 어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서 더 나가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치닫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모순이라고 합니다.


문을 닫아걸고 싶은 유혹도 견디며 살아온 시간들이 모순 앞에 멈춰 서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내가 탄 버스는 경치를 잘 구경하다가 쉬어야 할 곳에 쉬고 멈췄으면 합니다.


거기 정류장에는 무슨 이름이 걸려있을까,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마태오 6:6





어느새 저도 모르는 기도를 하면서 거기 다다른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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