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

아침에,

by 강물처럼



설을 앞두고 어머니가 쓰러지신 뒤 이것저것이 어수선해졌습니다.


한꺼번에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쳤고 현기증이 났습니다.


중요하다는 일주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불안이 힘을 빼고 여보란 듯이 우리들 가운데 앉아 있는 눈치입니다.


수가 틀리면 금방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제 마음대로 해댈 것만 같습니다.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는 어린것이 된 기분입니다.





어린것이란 말이 ´정인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상은 이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곳에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 놀랍습니다.


나의 불안이 어떻게 그 아이로 이어지는 통로를 가졌을까.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차분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쪽에서 살랑거리던 나비 날갯짓으로 저쪽에 몰아치는 비바람이 생겨나기도 한다니까요.


재판 중인 정인이 기사를 봤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은 세상을 얼마만큼 살아야 지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지금 제 어머니도 그런 표정일까 생각했습니다.


증언자로 나온 어린이집 원장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오열했다고 합니다.





감정의 혼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문장을 쓰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짐을 내려놓으신 표정입니다.


무엇이 그 속에 들어있을까 풀어보지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 짐을 정리하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지금 어머니는 자신의 짐을 내려놓고 멀뚱히 그것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묻지도 않고 걱정도 안 하고 자꾸만 주삿바늘을 빼어버리십니다.





사람들에게 심란한 마음이 전달될 것 같아 딱 열 분만 가렸습니다.


제 기준이란 것은 늘 그렇듯이 허랑 하기 그지없습니다.


내 쓸쓸함이 옮겨갈까 덜 걱정되는 분들은 고마운 마음으로 제외하였습니다.


나는 그것을 건강함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황을 분간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잘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전에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어제 낮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낯선 번호여서 머뭇거리다가 받은 휴대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친구 어머니였습니다.


´어디 아프냐? ´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제 어머니 하고도 잘 아시는 사이라 말보다 긴 한숨이 몇 번이나 새어 나왔습니다.


이제는 연로하신 친구 어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아 위태로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분에게도 아침 묵상을 보내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잘 보고 있는데 안 와서... ´





어제 오후에 아침에 쓴 묵상을 사람들에게 보냈습니다.


조금 미안하고 조금 뻔뻔스럽고 조금 멋쩍게, 하지만 메시지 하나를 전송하면서도


´아멘´ 그랬습니다.


할 말이라고는 그뿐인 듯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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