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교육의,

by 강물처럼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어도 너무 많이 늦었습니다.

무엇이든 제때를 알고 지키는 일이 기본인데 그러지 못하고 사는 듯하여 스스로도 못마땅한 경우가 많습니다.

깜짝 놀라셨을 것도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선생님께서 잘 맡아주셨던 강산이 아빠입니다.

2월이면 늘 이렇게 산이 선생님께 감사 편지를 적어보면서 지내왔습니다.

처음 4살 때는 저도 학부모가 된 기분에 그저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즐겁게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5살, 6살, 7살 그러면서 산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또 잘 자라줬습니다.

세상에 고운 소리가 얼마나 많으냐며, 그중에서도 자식이 책 읽는 소리만큼 기쁜 소리도 없다던 허균의 글처럼 저도 그랬습니다.

산이가 무엇인가를 하나 알게 되면 덩달아 즐거웠습니다.

글을 알고 수를 알아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일은 감사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 해가 다 마무리되고 새 학년이 되기 전에 선생님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적어 보냈습니다.

10년 세월이 지나고 산이는 중학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2020년 초반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말에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 없던 미증유의 현실이었습니다.

위정자도 사업가도 교육자도 아이도 부모도 모두가 혼란에 빠졌던 시절이었습니다.

불행 가운데에서 희망을 볼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키우고 다져야 할 공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의 연락을 받아 가면서 선생님들의 노고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 언뜻 기지개를 켜듯 몸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께 받은 인상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내 아이를 걱정하듯이'


사무적이지 않으시면서 그렇다고 사적이지 않으시고, 격하지 않으시지만 걱정과 염려가 묻어나는 목소리였습니다.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는 행정과 처신에 대해 너 나 할 것 없이 편승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손가락 받지 않을 만큼만 그리고 떳떳하지는 않더라도 미안한 일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고 사는 듯한 우리들입니다.

언젠가부터 모난 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 맞을 일이 두렵고 머리 아프고 성가신 일이 되다 보니까 모두가 마치 공산품처럼 질서 정연한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소나 인사, 심지어 학교와 학생, 학생과 교사의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부모의 위신도 곤두박이를 치는 시대에 위기가 아닌 것이 없는 위기를 직감하기도 합니다.

코로나는 그런 사회에 하나의 경종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또 아닌가 싶어서 지금을 지혜롭게 지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산이가 학교에 나간 날이 며칠이나 됐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가끔 물어보면 선생님도 좋고 친구들도 재밌다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아이의 현재를 기억해 두는 일이 제 할 일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 감사했다는 말을 2월 끄트머리가 다 되어서 전합니다.

사람들은 춘래불사춘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봄은 늘 여기에,라고 말합니다.

여기가 바로 봄입니다.

사람이 있는 곳, 편지를 쓸 수 있는 곳, 진짜 웃음이 있고 좋은 선생님이 계시는 곳.


총총



2021. 2월 28일 산이 아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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