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0

아침에,

by 강물처럼




여러 번 펼쳐서 볼 일입니다.


한 번에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자세가 아닙니다.


그때그때 다르게 보이는 것을 모두 경험하고서야 이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을 두고 심오하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평범함 속에 깃들어 있는 특별함을 찾아내어 즐거워하고,


존재 자체가 이미 특별한 것임을 알고 이것과 저것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일을 공부라 부를까 합니다.


바깥 것과 나의 일체를 향해 나아가는 여행을 시작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목적´이라는 말을 알려줘야 할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문장에서 ´목적´은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문장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다 그럴 것입니다.


´위해서´라고 바꿔 말해도 맛을 못 느끼고 실감하지 못하면 딱 부러지게 묻습니다.





너는 ´왜´ 태어났지?





이 질문 하나만 갖고도 세상을 여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힘없는 대답, 서로 민망했던 대답은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났나요? ´





돌아서면서 저 말을 잊지 못하고 떠올리는 것은 어딘가 내 속에서도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다음으로 넘어갈 줄 알아야 다른 말을 만날 수 있을 텐데요.


거기에서 비로소 ´목적´이 나와 있을 텐데 말입니다.


도무지 쉽게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를 우리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오 20:28





봄맞이라는 말도 있는데 오늘부터 정리해서 내놓아야 할 것이 생겼습니다.


저는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늘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섬기러 왔다. ´고 고쳐 말하기로 합니다.


자본이 곳곳에서 꼿꼿이 머리를 쳐들더니 ´섬긴다´는 말도 하나의 선전 문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행복하지 못했던가 봅니다.


섬기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어야 되는,


부드러운 명제를 주머니에 넣고서 길을 따라 떠나면 저는 아무래도 두루 다닐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구루 guru가 될 것도 같은 꿈을 꿉니다.


바람 같은 구루.


수염 난 구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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