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제 거룩한 수업을 했습니다.
´작은 사람들´
´그것밖에 없는 사람들´
´그렇지만 살아가는 사람들´
거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코밑이 까무잡잡해지는 사내아이들을 앞에 두고 이야기했습니다.
직업에 귀천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귀댁의 자녀들에게는 어떻게 가르쳤고 어떻게 일러주고 계시는지요.
´알 건 알아요. ´
경계에 다다른 아이들은 표시가 납니다.
속에서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데 그것을 감출 요량은 없습니다.
여드름이 나고 머리가 커지고 소리가 굵어지면서 말 그대로 그들도 알 것은 아는 나이가 됩니다.
알 것을 알면 좋은 것도 있지만 서러운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생깁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곧잘 한다는 아이들이 함께 앉아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교직에 있는 아이도, 아빠가 피부과 의사인 아이도 같이 섞여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놓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것을 따라 배운다.
만 명 중에 1등 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냐?
우리는 거기에만 집중하고 그것만 보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몇 분 계신다.
버스 운전을 하시는데 ´버스 운전´을 하는 것이 감동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늘 공부를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감동적이냐?
의사가 치료하는 것은 감동적이냐?
그렇다면 버스 기사가 운전하는 것도 감동적이었냐?
우리는 가끔, 아니 자주 착각한다.
운이 좋은 것을 존경할 때가 있다.
좋은 능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존경할 만한 일이라면,
부족한 능력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는 그것을 근청스럽다거나 안타까워할 줄만 알지 존경하지는 못한다.
너희는 운이 좋은 것과 감동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아무나 부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버스 기사님은 나에게 그러더라.
"우리가 모르고 쓰는 말이 참 많아요.
잘못 쓰는 말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요."
나는 그분에게서 배우는 자세를 배운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더니 아버지하고 사사건건 부딪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고 반항적인 것이 아무래도 사춘기 같다고 그랬습니다.
1주일에 한 번 저와 같이 산책을 하며 일본어와 한자 공부를 하는 300번 버스 기사님이 바로 그분이십니다.
다행히 제 말이 힘이 있었던지 우성이는 눈이 반짝였습니다.
끝을 잘 맺어야 느낌을 오래 남깁니다.
우성이와는 눈으로 아는 체를 하고 다른 아이들을 쳐다봅니다.
´너희들이 작은 것의 위대함을 알아볼 때 너희는 저절로 커진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 배운 분사가 아니라 그것이다. ´
고맙게도 다들 좋은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잠시 조용해진 책상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비가 내리는 하늘, 나는?
나는 그랬던가, 그러고 있는가, 그럴 수 있나?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마태오 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