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초여름 밤이었습니다.
훈련소 연병장에 우리를 쏟아놓더니 군용 트럭은 곧 사라졌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우리나라가 맞기나 한 것인지 일렬로 늘어선 검은 그림자들이
사람의 두려움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누군가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더니 사람들이 땅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습니다.
웅성거림과 들썩임, 거친 숨소리와 땀, 그리고 모기들의 윙윙 거림이 한데 엉키더니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여기가 바로 군대구나!
허름한 막사로 들어가 누가 누군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눈만 반짝였습니다.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누더기를 군데군데 쌓아놓습니다.
아무거나 고르는 것입니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몰면 사람도 쥐새끼처럼 날렵해집니다.
군대에서 맨 처음 했던 일, 바로 그다음에 했던 일이 그 밤, 저를 편안하게 해 줬습니다.
<너는 살아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루카 16:25
훈련병들은 번호로 불립니다.
저는 72번 훈련병이었습니다.
이름은 사라지고 72번! 하고 누군가 부르면 72번, 훈련병! 이 대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 번호표를 윗도리 왼쪽 가슴에 다는 일이었습니다.
바늘과 실도 군인이 되면 지급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군홧발로 침상을 뛰어다니며 사람을 금방이라도 밟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엊그제까지 사회에서 술 마시고 놀던 스무 살들의 느슨한 정신을 한껏 조여 보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바느질을 하면서 침착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바느질을 잘해서가 아니라 옆에 있던 사람들이 바늘귀에 실도 꿰지 못하는 것이 나를 평화롭게 했습니다.
군대는 분명히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힘들었습니다.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미안하지만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참아낼 수 있었던 힘도 ´사람들을´ 보면서 생겨났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부자´는 체념도 하고 깨닫기도 했지만 결국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형제를 구하고자 했지만 그마저도 ´내, 나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소유격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세상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거기에 머물고 있는 모습입니다.
방금 무슨 생각 하나가 스치고 지납니다.
´소유격´ 다음에 올 수 있는 것은 모두 명사입니다.
명사는 이름이며 물건이고 재산입니다.
´행복한´은 그저 하나의 상태에 불가하지만 ´행복´ 그러면 마치 상품처럼 모양새를 갖춥니다.
나의 집, 학교, 돈, 책, 형제, 하느님, 건강, 사랑, 꿈, 가족, 나라....
모든 명사들의 집이 소유격입니다.
그 소유격 중에 가장 앞에 선 것은 언제나 ´내´가 됩니다.
내가 있어서 다른 것들도 그렇게 기세 등등한 것 같습니다.
목요일 아침, 거꾸로 적어봅니다.
집의, 학교의, 돈의, 책의, 형제의, 하느님의, 건강의, 사랑의, 꿈의...
그들이 소유하는 것은 무엇이고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눈을 뜬 채로 꿈을 꾸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