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 나희덕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파문 波紋
갸륵한 마음을 만난 적 있다
맑은 날의 구름 같았고 흐린 날의 바람 같았다
혼자 지새는 풍경이었으며 오래 남아 맴도는 울음이었다
그대 누구를 사랑하였던가
묻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나보다 먼저 죽었으니까
김수영의 풀처럼 사람의 손에 닿는 일 없이
낮달이 떠다니는 호수에 배를 띄우고서
아주 없어지지 않는 동그라미를 던져놓는다
물이 다 마르기 전에, 허파로 숨을 쉬는
사랑했었던 날에 입었던 옷을 빨아야겠다
옷을 담았던 물빛들 하나하나가
먼길 돌아서 거기 이르면, 그러다가 나를 잊기를
누구라도 다 벗어놓고 우리 헐헐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