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키우던 화분들이 어떻게 지낼까.
매일 같이 물을 주고 자기들을 키웠던 발소리와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목이 한참 말랐을 것이다.
벌써 죽은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처음으로 인간의 배신을 경험하느라 속이 쓰렸을 것이다.
고약한 심술이다.
사람이 늙으면 그나마 욕심이 빠져 화분에 물 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어 빠뜨리지 않고 사는 것 같더구먼...
끝까지 왜 그러나, 어째서 그러는 것인지 묻고 싶은 한마디를 독하게 품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너는 누구냐.
누군데 우리에게 물을 주느냐.
어둠과 공포에 질식한 얼굴들이 결코 나를 반기지 않는다.
주인, 그들은 엄마 같은 주인을 원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뜨내기의 어쭙잖은 동정을 반기기는커녕 그들은 눈치채고 저희끼리 입을 맞춘다.
물을 주는 것부터 우리 엄마가 아니잖아, 지금 저것은 침입자야, 분명히!
도대체 엄마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복음을 적고 묵상 가운데 자리에 앉았지만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일기를 적습니다.
먼저 쓴 일기를 이쪽으로도 가져왔습니다.
고약합니다.
일기로 기도를 대신하겠다는 사고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집과 사람은 마치 영혼과 육체 같아 보입니다.
알고 있었다.
정말이지, 알고 있는 것은 보잘것없는 것 같습니다.
알면 뭐 하겠습니까.
어머니가 비운 집은 비어있는 집이 되었습니다.
가지런히 개어있는 옷가지며 호미가 담겨있는 낡은 박적 위로 늦은 오후의 자자란 고요가 앉아있었습니다.
낯선 이의 등장을 경계하는 그들의 침묵에 미안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처지였습니다.
내가 말한다고 그들이 알아듣기나 하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시다시피 아무 말이 소용없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나 같은 사람이 내는 인기척이 아니라 어머니의 발걸음입니다.
주인이 아니면 끄떡도 않는 나이 먹은 누렁개처럼 사람을 보고도 반기는 기색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어머니 집에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고집스럽게 보였습니다.
모두가 빛을 거두고 침묵 속에 잠겼습니다.
그들에게서 ´동행´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떨어져서 함께하는, 어머니도 어딘가에서 그것들을 살피실 것입니다.
서로가 잊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구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루카 4:27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봅니다.
꽃들에게 신앙 같았던 그리고 당신에게 신앙이었던 꽃들을....
이번 사순 시기에는 아무래도 묵주기도를 자주 하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