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3

아침에,

by 강물처럼




아이들은 도덕이나 윤리, 양심 같은 것을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우고 있을까요.


그것들은 과연 어떤 과정으로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때가 되면´ 알 것 다 아니까,


일부러 나서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요.





한때는 칼보다 더 힘이 센 것이 펜의 힘이었습니다.


펜이란 말, 언제 써봤던 이름인지요.


하나의 노스탤지어가 되어버린 기억입니다.


펜 끝이 무디어졌다는 말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까맣게 잊힌 것들, 잊혀 가는 것들, 잊힐 것들에게 안녕.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그럽니다.


"그런 이야기해도 돼요?"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너희는 그 표정들이냐?


깊이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래도 선생이라고 나를 걱정하는 아이들이 귀여웠지만 무엇인가 두꺼운 유리창이 가로놓여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상냥하고 보기 좋았던 여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나보고 성당에 데리고 가줄 수 있냐고 물었던 그날이 꿈처럼 믿기지 않는다.


참 즐겁게 지냈던 한 시절이었다.


그랬던 그 아이가 서울로 전학을 가기 전에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어린 마음에 당황스러워 대충 인사를 하고 보냈던 것이 많이 후회된다.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보고 싶은데 이제는 서로 몰라볼 것이다.





마침 영어 지문에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들의 행동의 변화, 요즘 유행하는 케미라는 말 - chemistry,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긍정적 반응 - 이 나왔던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한 적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들 고개를 흔듭니다.


그럼 좋아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가장 신기한 대답은 ´여자들은 이상해요. ´였습니다.





유튜브는 놀랍습니다.


그 무한한 콘텐츠에 압도될 정도입니다.


속수무책이겠다는 생각이 유튜브에 접속할 때마다 들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이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고 감정을 공유하며 어떤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거기는 정보의 홍수가 아니라 바다입니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어떤 배에 타고 있는가입니다.


세월호 같은 그런 배여서는 안 됩니다.


바다에 나가려면 그만큼 튼튼한 배여야 합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요한 8:28





어머니나 아버지 입에서 저에게 가르쳐 주셨던 도덕이나 윤리, 양심은 없었습니다.


다만 먹고사는 일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꼭 하나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성당에 가라. ´





시간만 되면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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