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5

아침에,

by 강물처럼




징크스는 학생들이 쉽게 생각했다가 잘 틀리는 스펠링으로 이루어진 말입니다.


Jinx,


가만 보니 단어 자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듯합니다.


그것은 인과 관계가 없는 우연의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 못 하는 일종의 미신 같은 것입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데 그 우연이 불길한 쪽에서 해석되는 것이 바로 징크스입니다.


예를 들어, 13일의 금요일이나 한자 문화권 사람들이 숫자 4를 반기지 않는 것도 거기에 뿌리를 둡니다.


주로 승부를 겨루는 직업군의 사람들이 징크스를 믿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어떤 선수들은 게임에 지지 않기 위해 수염을 깎지 않고 또 절대로 운동장에 그려져 있는 라인을 밟지 않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시합을 앞두고는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경우도 봤습니다.


징크스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저마다 루틴 Routine이라고 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어떻게든 지켜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입니다.





어떤 징크스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저도 하나쯤은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먼저 말하면 잘 안됩니다.


그게 조금 우습기도 한데,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거 여기에서 더 말하면 안 되는데 왜 자꾸 이야기하는 거야?"





저 같은 경우는 징크스라는 말을 알긴 하는데 정작 믿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에 빠졌다고 느끼지 않으니까 그것을 깨뜨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좋은 일이 있거나 하면 말하고 싶어서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이 가벼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어떤 일들은 꼭 그렇게 먼저 말이 나옵니다.


거짓을 말하거나 사실을 과장하지 않더라도 약속이 지켜지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책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출판사에 가서 계약이란 것을 했으니까요.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떠들었던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떠들고 같이 알고 지내던 암 환자들에게 말하고, 가족들에게 또 떠들고.


엊그제는 책에 들어가는 머리말과 약력을 써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꽤 오래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하나의 단락이 지어지는 듯했습니다.


봄바람이 차가워도 꽃은 피우는구나 싶었습니다.





다시 또 하나를 미리 말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건 말하고 싶지 않지만 미리 머리말을 돌려버린 탓에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또 누군가는 고맙게도 저를 기다리실 테니까요.





하루 빼먹고 새벽에 쓴 일기입니다.





"그러니까 심란스러웠던 것이다.


어제 써야 했을 일기를 빼먹었다.


쌤앤파커스의 요구는 때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방법과 절차, 예의에도 어긋났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떠든다는 인상밖에 없었다.


진작에도 그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책이 나온다니까... 그러면서 지내왔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출판사와 나 사이에서 수고했던 박규리 시인도 그만 부담을 느꼈으면 했다.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이 체기 滯氣를 어떻게든 풀어야 하는데...


3년을 바보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결국 머리말을 쓰고 취소되는 이상한 계약이다.


3년 전 계약이란 것을 하러 파주까지 한 걸음에 달려간 내가 자꾸 걸린다.


'이름도 없는 사람'이란 말을 그때도 앉아서 들었었는데 여전히 그 이름이 따라다닌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잘못한 것 없이 혼나는 기분.





사람들에게, 돌아가신 분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려고 했던 것이 이렇게 씁쓸한 뒷맛을 안길 줄이야.


부푼 마음으로 그동안 즐겁게 기다렸던 것은 솔잎 같은 것인 줄 알았었는데...


싱그러운 내음.


그런 것은 없었다."





이렇게 또 말하고 나니까 무안하면서도 괜찮은 느낌입니다.


이번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했던 적은 없었는데 늘 그렇게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 징크스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징크스는 믿지 않습니다.





<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루카 1:38





제가 믿는 것은 이런 말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루틴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묵상을 하고 글을 써볼까 합니다.


천천히 제가 좋아하는 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이것도 제가 드리는 약속입니다.


또 미리 말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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