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0

아침에,

by 강물처럼

오늘은 아침 묵상을 다 적기 전에 좀 지쳤습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는 모른다´고 그랬다면 오늘 복음을 적으면서 저는 세 번 ´붙여쓰기´를 할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데 저는 한 글자씩 치고 있는 것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똑같이 써놓은 것만 찾으면 되는데.... 싶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간사하다고 하지 않고 건강해져서라고 받아들입니다.


미안합니다. 멋대로 해석해서.


제가 그렇게 해석하는 데에는 연유가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힘들 때는 저절로 간절한 마음이 생깁니다.


우물이나 샘처럼 아래에서 솟고 때로는 빗물처럼 위에서 내립니다.


그때는 꼭 하나만 하고 싶어 합니다.


무엇이든 하나면 될 것 같은 것은 욕심을 걷어낸 맑은 물 같습니다.


손으로 떠서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약수가 됩니다.


모든 것은 흐르고 있습니다.


입장에 따라 그것을 변했다고도 하고 컸다고도 하고 자랐다거나 예뻐졌다고도 합니다.


저는 그것을 ´건강´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건강한 것은 힘이 생겨 다른 것도 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다른 것이 많을수록 힘이 센 것이고 힘들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또 관성이 작용해서 좀처럼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덜 건강하려고 합니다.


꾀병이나 엄살 같은 것이 아니라, 오래가고 싶은 것입니다.


굵고 짧게라는 말은 건강한 사람이 외칠 수 있는 구호입니다.


아픈 사람은 간절해집니다.


봄꽃이 오래 피어 있기를, 하루라도 더 볼 수 있기를.


그런 마음으로 통화를 하고 편지를 쓰고 사람을 바라봅니다.


새벽에 쓰는 복음이 그렇습니다.


할 수 있다면 가늘고 여리고 흔들리면서 더 적고 싶은 것입니다.





<"나다.">


"바로 접니다."





묵상의 길에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다름 아닌 ´저 자신´ 아닐까.


무엇인가를 꼭 믿게 된다면 거기쯤에서 새어 나오는 말은 ´다 이루어졌다. ´는 고백 아닐까.





저는 잘 몰랐던 ´최성봉´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고아원, 폭력, 껌팔이, 막노동, 악성 종양, 대장암, 전립선암.


어떤 공통점이 그와 여러분 사이에 있는지요.


저기에 동그라미 몇 개나 그릴 수 있는지요.


식구가 없고 5살 때 폭력을 피해 고아원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어두운 과거´라고 그는 자기를 소개합니다.


말주변이 없습니다. 그것을 어두운 과거라고 부르면 우리는 밝은 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맞는지요?


결코 어둡지 않은 별 같은 목소리로 불행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가 투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그분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 저마다 한몫씩 차지하였다. >





간절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욕심에 시달리는 군사들은 무엇이든 차지합니다.


아직 많이 젊은 그는 간절히 노래하고 싶어 합니다.


desperate. 너무도 절실한.





기도가 그에게 닿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의, 그리고 새벽 닭들의 기도까지도.





https://youtu.be/28aZ0fBmr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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