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 정채봉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고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를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 틈에 피어난
민들레 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세상에 남겨놓은 것들은 결국 다 사라지잖아.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아니면 자식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허술하기 짝이 없더라는 거 우리는 얼마간 알고 있잖아.
고드름이, 그러고 보니 고드름 못 본 지 꽤나 된 거 같다.
고드름도 없는 세상에 고드름을 보면서 즐거워했을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보는 일은 미리 죽어보는 연습같이 적막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정채봉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그가 남긴 말들이 다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은 고드름 끝에 달린 물방울이 마지막까지 빛나던 순간일 거야.
봄이 오는 날에 똑똑 땅에 떨어지면서 민들레 꽃 한 송이가 피어날 자리를 촉촉하게 마련해둔 절명 絶命이니까, 아니 순명 順命이었으니까.
그가 하던 기도에 손을 얹고 한 자 한 자 그를 따라 시늉으로라도 풀밭 같은 부드러움이 되어본다.
나는 그만 부끄러워 하늘도 다 올려보지 못한다.
마시다 만 찻잔이 식어가며 마음이란 것이 살아있기는 한 것인지 묻는다.
얼마나 기도해야 하나.
해 질 때까지 거기 앉아서 가만 풀벌레 소리나 들었으면 좋겠더구먼 5시에 맞춰 일어서는 나는 뭐 하나 잘하는 것이 없다.
황매화가 유난히 밝은 봄날에 사부작사부작 걸어가는 저 사람이 나는 못내 아쉬워서 한참을 그렇게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