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3

아침에,

by 강물처럼




우습거나 낯선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도 몇 가지 경건한 의식이 있습니다.


지금은 습관이 되어 저절로 자세가 잡히기도 하는데 잠에서 깨면 정신이 들기 전에 엎드린 채로 되뇝니다.


´감사합니다. ´


그러고 나서 바로 몸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일어나기가 귀찮아집니다.


그때 또 저를 일으키는 힘이 바로 ´여기´를 읽고 있는 눈동자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분들과 전혀 모르는 분들이 함께 저를 일으킵니다.


제가 기도할 수 있게 페이지를 펼치고 불을 밝히고 침묵 속에서 저를 지키시는 분들입니다.


묵상 끝에 ´아멘´이라고 적고 나면 고요와 안도, 위로와 위안에 둘러싸이는 듯합니다.


모든 기도의 마지막을 지키는 ´아멘´처럼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전송하는 손가락 끝의 온기가 사람들 이름을 부르면서 반가워합니다.


아침에 저는 그렇게 따뜻해집니다.


저녁이 되고 밤이 찾아오면 새벽에 얻어 쓴 문장들은 흐릿해지고 내 모든 것이 저뭅니다.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평화롭기로는 기도만 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루 동안 쌓아놓은 것이 무엇이었든 그 발판이 되는 곳에 기도가 있어서 좋습니다.


석양과 기도는 사람을 돕고 삶을 위한 응원가입니다.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는 내일로 출전합니다.


아무리 한가롭고 여유가 있더라도 낮 동안에는 그저 살아가는 일뿐입니다.


삶과 기도가 하나여도 좋은데 도무지 그처럼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도 긷고 힘을 얻고 용기를 장착해서 하룻길을 내딛습니다.


종교가 있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명상´이나 ´호흡´이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없다면 ´숨통이 트일 것 같은´ 그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 24:30





어제 짜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인품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보고,


그것이 가능하냐고 묻는 분이 계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아마 제 오랜 친구들 - 51년 인생 중에 41년 이상 된 친구들 - 은 모두 끄덕였을 것입니다.


그런 것이 범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심전심이란 말이 호수 위를 건너오는 풍경 말입니다.


저는 알 수 있습니다.


방법을 말씀드릴 수는 없고 다만 이렇게 말해두는 것이 쉬울 듯합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두 가지를 항상 보고 배워왔습니다. 때로는 맛도 보고 냄새도 맡고 항상 그 분위기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짜장면을 만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짜장면을 만들어 파셨고 늘 성당에 다니셨습니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루카 24:32








작가의 이전글기도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