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변하고 몸매는 더 빨리 변해갑니다.
그나마 우리의 목소리와 눈빛은 뒤에 남아 자리도 정리하고 저희끼리 천천히 따라오겠다고 합니다.
생각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학생 때 한 번쯤 들어보셨을 고려 말 시인 우탁의 글입니다.
" 한 손에 가시 들고/ 다른 손에 막대기 들고/
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기로 치렸더니/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중간시험이 곧 시작됩니다.
아이들은 누구를 위해 그러는지도 모르고 긴장한 표정들입니다.
아마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서른, 마흔이 되어서도 벗어던지지 못했던 옷들을 이 아이들은 주섬주섬 챙겨 입는 것 같습니다.
책을 내려놓고, 흔하게 들어왔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우리가 왜 스트레스가 많을까?
너희들 시험 본다니까 불편하지?
항상 그런 거 같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
그 단계가 없는 거야.
사람들이 자주 듣는 말이 있어. '꿈을 가지라고.'
그런데 이상해, 꿈을 가지라고는 하는데 꿈이 도대체 뭔지 모르는 거야.
아마 말하는 사람도 꿈이 뭐냐고 하면 뭐라고 할까?
나도 사실 꿈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잖아?
우리가 사는 곳이 사막이라고 한다면 그 사막에서는 길을 어떻게 찾을까?
그냥 길 같은 건 찾지 말고 살까?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야.
오아시스가 없어도 사막은 아름다울 수 있고 아름다워야 해.
왜냐하면 사막은 문제가 아니고 꿈이거든.
우리는 사막을 건너는 6가지 방법, 어쩌고 하면서 자꾸 방법을 찾는다.
건너고 싶은 거지, 건너지 못하면 금방 무슨 일 생길 것처럼.
조금 비겁하게 들릴 수 있을 거다, 아직 어린 너희들에게 나이 먹은 내가 하는 이야기 자체가.
그런데 너무 문제만 풀지 않았으면 해서...
소설도 읽고 시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서.
너희가 실컷 봤던 책이 겨우 문제집에 불과하다면 꽤 쓸쓸한 일일 테니까.
이런 말 괜찮을지 모르겠다.
´문제를 풀듯이 말고 꿈을 꾸듯이. ´
누군가는 인생을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을 꿈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어.
누구의 삶이 정답이라고는 말 못 하지만 어느 쪽 길이 가보고 싶냐?
과연 사막에서 길을 찾는 방법이 뭘까?
별도 보고 달도 보고 그러는 거지.
오래전에 TV 광고에 나왔던 말인데,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사막 전체를 길로 삼으라고 그러더라.
그 말이 결코 쉽지 않지만 결국 하나의 ´범위´를 이야기하는 거야.
너의 범위는 어디까지냐 묻는 것이지.
별도 달도 뜨지 않는 밤은 또 얼마나 많겠냐?
그때 꿈을 보는 거야, 꿈이 있는 사람은 그럴 때 꿈을 꾸거든.
진짜 꿈."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소중한 시간을 말장난으로 덧칠해 버렸는지도...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루카 24:36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고 좌절감과 비참함에 빠진 제자들에게 인사를 건네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아라, 나를 만져 보아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안심해라.
너희가 평화 아니겠느냐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평화를 가져라가 아니라 너희가 평화다!며 깨우치는 듯하십니다.
평화는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품목도 아니고 투쟁해서 쟁취하는 대상도 아닌 듯합니다.
삶이 온전히 평화인 것을 그것이 사막이며 또 꿈이면서 문제입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보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