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7

아침에,

by 강물처럼




벼룩에 대한 인상적인 이야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벼룩은 높이뛰기 선수입니다.


벼룩은 자기 키의 200배를 뛰어오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했습니다.


하지만 벼룩을 빈 어항에 넣고 유리판으로 뚜껑을 삼아 어항 입구를 닫아 놓으면 한 가지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뚜껑에 부딪치지 않을 만큼만 뛰어오르는 벼룩이 생겨납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뚜껑을 제거하더라도 벼룩은 튀어 오르던 만큼만 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예전의 능력을 어느 순간 잃고 만다는 사실이 냉정하게 사람을 각성시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한 생각이 따라다녔습니다.


그 생각을 계속 견지했던 하루였습니다.


앞에서 또는 뒤에서 거리를 둬가면서 생각의 생각을 살폈습니다.


아침 묵상을 적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것은 습관이며 리듬이 된 듯합니다.


하지만 밥 먹는 일이나 잠자는 일처럼 따로 의식적인 행위에서 벗어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노력해야 하고 자세를 잡는데 연습과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저녁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고 돌아온 다음 날에도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그때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구나.


그러면서 동시에 무엇인지 모를 의무감이 거기에 달라붙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밥 먹는 것이 습관이나 의무가 되면 별로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그러니까 무엇을 하든 맛이 있기를 바라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켜봤습니다.


아침 묵상을 적지 않고 보낸 하루는 꽤나 집요한 면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불편함부터 사람을 편하게 놔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을 불가 佛家에서 집착이라고 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롭지 못함으로 자유함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자유로워야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200배까지 튀어 오를 수 있었던 벼룩, 그리고 그것을 까맣게 잊은 벼룩이 되고 말 것입니다.


뚜껑이 있든 없든 내가 벼룩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잠시 새벽 기도를 할 수 있었던 능력이 생긴 것이 아니라 뚜껑에 덮여 새벽 기도만 하게 된 것은 아닌가,


원래 뚜껑으로 덮인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뚜껑이 없던 세상이 맨 처음이었지 않았겠나.


어느 순간 우리는 없는 뚜껑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겨우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것.


그마저도 대견하다 싶어 하고 지키지 못해서 안달하는 그 생각들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땅에 속한 것들이지 싶습니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 요한 3:31





봄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꽃이 지면 다른 꽃이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계속 꽃은 피고 있습니다.


봄,


사람 사는 것하고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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