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산이의 4월 스토리 3rd.

교육의,

by 강물처럼

꽃 진 자리가 비어있지 않고 풍성하다.

쓸쓸하다는 느낌 대신에 기대라든지 그래 기대가 맞겠다. 다음에 그 자리에 피어날 것이 무엇이든 반가울 거라고 미리 약속해 두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일까, 꽃을 위해서일까.

열이 올랐던 듯하다.

마치 은퇴한 야구 선수가 배트를 힘껏 돌려보고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다 돌아서 홈베이스를 밟고서 내쉬는 숨과 고동 鼓動, 박자 같은 것들이 한 데 어우러졌다.

나도 중학교 2학년이 되어볼 걸 그랬나 싶다.

아빠는 일부러 네가 보는 책들을 펼쳐보지 않았다. 시험을 처음 보는 아이여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영 모르는 것 같기에 문제집을 사다 주긴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답답한 구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나는 왜 나서지 않았을까.

고백하자면 아빠는 네가 끝내줄 거라고 믿었던 거 같다.

나는 뒤에서 표정 관리나 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간지럽혔다. 그것은 유혹적이었으며 심심할 때 마시는 캐러멜 마끼아또처럼 달콤하기까지 했다. 에이스가 등판하는 자기 팀의 경기를 느긋하게 지켜보는 프로팀의 구단주가 그렇지 않을까.

그것을 자만이나 자신감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바람이라면 어떨까. 바램이 되기도 하고 바람이 되기도 하는 그 마음 말이다.

나는 너하고 오래 지내왔으니까. 내가 너를 아는데, 냥 그렇게 말하면 안 될까.

아빠는 늘 퇴고를 게을리하는 편이다. 그래서 엉뚱한 글자가 섞여있고 반복해서 쓴 말이 끼어있고 대충 했다는 느낌이 다분하다. 내가 쓰는 글처럼 내가 사는 모습도 그것하고 많이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도 인정!

하지만 언제나 글을 쓰고자 한다.

글을 쓰지 않을 때에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둘러보고 시간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

너의 시험은 어땠냐?

너도 나처럼 삐뚤빼뚤하게 뭔가를 적어냈는지. 아니면 다 써놓고 살펴본 일 없이 나처럼 '보내기'를 눌러버렸는지.

매번 하는 이야기지만 너는 엄마하고 사이가 좋아서 좋겠다.

엄마는 이번에도 너를 잘 대우해주더라. 아빠는 이틀 정도는 너하고 말도 하기 싫었다.

'그러니까, 그거 보라니까' 이런 말로 시작하는 훈계를 하고 싶은 아빠는 세상에 없을 테니까.

대신에 나도 하나 배웠다.

'우리 아빠'도 많이 쓸쓸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아빠를 기쁘게 했던 적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30년 만에 들었다. 그동안에는 나 사는 일로 그런 마음을 쓸 겨를이 없었는데 모처럼 아빠의 아빠한테 미안하고 면목없고 죄송했다.

대학 시험에 떨어지고 그 넓은 운동장을 되돌아서 걸어가는 모습만 봤었는데 그때 아빠 표정은 어땠을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식은 아비의 표정에 깃들어 하나의 주름으로 머문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도 쉰 살쯤 되면 그때에 내가 쓴 말들을 주섬주섬 챙겨 보아라.

중간시험이 끝나면서 우리의 4월도 다 지나갔다.

그 사이에도 날이 춥거나 더웠고 미세먼지나 황사, 코로나 같은 말들이 우리의 일상을 채웠다.

하지만 울긋불긋 철쭉이 피어나기 시작했으며 곧 아카시아 향기도 진동할 것이다.

너도 밖에 나가서 걷고 싶다고 했지?

어디를 걸어볼까.

배풍등이 어디 가면 많던데, 괴불주머니 하고 광대나물을 알려주려면 그래도 지리산 아래에는 가봐야 할 것도 같고.

아빠가 뭘 해주면 좋을까?

아빠는 항상 기다리는 역할을 하기로 하자.

내가 잘하는 것이기도 하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주고도 싶거든.

마당을 쓸고 언제나 네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장면에서는 음악이 흐르게끔 준비하고 싶으니까.

4월에도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런 말, 나도 한번 해볼까 싶다.

'사랑한다, 산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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