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51

아침에,

by 강물처럼




평화를 얻기 위해 분투합니다.


일견 어리석어 보이기도 합니다.


분투를 어떤 식으로 보고 처리하느냐에 따라 후에 얻게 될 평화의 질도 달라집니다.


희생 위에 세워진 평화가 곳곳에 만연합니다.


평화를 지킨다는 말은 맞는 말인지요.


도둑이 없는 땅에서 도둑맞을 걱정을 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내 평화는 언제든 무너지고 빼앗길 수 있다는 의식은 평화를 누리는 사람의 것이 맞는지요.


그렇다면 평화는 없습니다.


평화가 없다면 무엇으로 살아갈지 막막해집니다.


평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에 있는 무엇입니까.


본질을 꿰뚫는 시선, 그 뒷면으로 평화가 달리고 있습니다.


이슬은 물방울이지만 그 물방울이 고요한 평화를 전합니다. 그렇지만 물방울인 것을 명백히 합니다. 나는 물이다. 거기에는 일체의 인위적 행위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저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일 뿐입니다. 그것이 평화라니요. 평화는 그렇게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평화입니다. 공기처럼 가볍고 숨처럼 투명한 연한 것들의 평화, 실오라기 같은 평화를 쥐고서 평화, 평화인 줄 알아보는 평화, 그 힘이 종교가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게 종교가 되는 존재들 말입니다. 기도 같은 움직임, 살아있을 적에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바람, 그런 것들 말입니다.





어떤 형질이든 이다음으로 전달됩니다.


전달되지 못하는 것은 도태되거나 사라지고 맙니다.


내가 받은 것들이 나를 이뤘듯이 내가 전달하는 것들이 다음 세상의 부분이 되고 모습을 형성합니다.


나는 평화로웠으며 그 평화를 온전히 건네줄 수 있는지 늘 묻습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평화 없이는 소용없습니다.


삶이 고해의 바다여도 평화롭고자 합니다.


그러니 그 평화를 어느 것 위에 쌓아야 할지, 사람은 많이도 처량하고 바다는 그만큼 깊고 푸르기만 합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요한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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