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55

아침에,

by 강물처럼




꽃을 한 번 떨구더니 다음에 난 꽃은 더 오래 달고 있습니다.


베고니아 화분 하나를 얻었을 뿐인데 은근히 사람의 호기심, 기대감 그런 것들이 살랑거립니다.


오랜만에 ´이다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된 듯하여 꽃을 볼 때마다 이쪽저쪽을 살핍니다.


네이버 검색을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더 기다려 보고 싶습니다.


두 번째 꽃은 확실히 더 환하고 꽃잎들마다 5월, 청춘 같은 활달한 기운을 뽐내는 듯합니다.


몇 번이나 반복될지, 그 반복 안에는 또 어떤 커브나 슬라이더, 체인지업 같은 변화무쌍한 것들이 살고 있을지 흥미진진한 시합입니다.


그에 비해 선인장은 - 저 선인장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데 그만큼 부지런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아쉽지만 오늘도 그냥 ´선인장´이라고 부르는 나를 원망하지는 않기로. - 꽃을 한 번 피우더니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털끝만큼도 절대 움직이는 일이 없습니다. 바위, 바위처럼 숨을 쉽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한 번씩 만져주기도 합니다. 가시가 없는 넓은 면을 슬슬 간지럽히듯이, 그것으로도 정 情 이 갑니다.





앵초, 엊그제 본 꽃.


이름이 이쁜 꽃입니다.


´예쁜´이라고 쓰지 않으면 틀렸다고 컴퓨터는 알려주는데 ´이쁜´을 예쁜이 대신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시 詩를 쓰는 마음이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뜻일 겁니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지만 꽃 이름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아마 ´개명´하고 싶은 꽃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저만해도 어디 가서 ´강물처럼´이라고 이름을 적어놓은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장난하냐고 그러면 어색해지지만 슬쩍 재미있는 분위기가 퍼지는 것을 선호하고 가능한 그러고 싶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름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푸른 나무는 나의 친구´


이것은 인디언식 제 이름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이름을 불러주고 싶은 존재들을 자주 마주치게 됩니다.


´그냥 걸었어. ´


정답지만 쓸쓸한 실루엣입니다.


5월은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자꾸 말을 걸어옵니다. 살아있는 것들이 가장 신나게 흔들어대는 계절입니다.


빛깔도 출렁일 줄 알고, 향기는 너울댑니다. 모르긴 해도 추억도 멀리 소풍을 다녀오겠다며 도시락을 챙길 것입니다. 소리가 가득하고 그 소리에 멜로디가 담기는 시절, 개울물도 통통 튀어 오르며 쨍하고 빛이 되는 날들이 5월에는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 요한 15:18





지금은 5월입니다.


우리말로 적당하게 표현할 말이 없는데 일본어로 くよくよしないでkuyokuyo sinaide.라고 인사할 때가 있습니다.


사전에는 ´끙끙대지 말고´ 그러는데 저는 고개를 떨군 채 길을 걷는 뒷모습을 떠올립니다.


언어를 기억하는 저만의 방식입니다.


꽃이며 길, 사람을 간직하는 방식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는 어떤 것들을 연마해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연마라는 말이 어색하면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길도 새끼손가락도 다 걸어보는 것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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