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 하나만 봐도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습니다.
몇 달이나 며칠 전부터 준비하는 규모가 큰 약속 말고 사소하고 작은 약속일수록 사람이 드러납니다.
대부분 크고 중요한 일은 비슷한 모양으로 준비하는 까닭에 따로 개성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과 또는 한 달에도 몇 번씩 하는 일상적인 약속들, 거기에 사람을 읽어내는 코드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약속 시간이 다 되어 출발하는 습관은 끈질기게 오래갑니다.
그런 것을 일일이 지적하면 속 좁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또 분위기가 흐트러질 것 같아 그냥 지나칩니다.
성당 미사에 가는 시간을 곰곰이 따져봤습니다.
신호등이 5개 있는 길하고 4개 있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거기에서 시간이 다 지나갑니다.
30분 전에 출발하면 빠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20분에 출발하면 아슬아슬합니다.
그 10분이 제가 약속을 지키는 태도를 드러냅니다.
그것은 어쩌면 삶을 대하는 저의 태도일 수도 있습니다.
나와 타인의 삶에 내가 허용하는 범위, 내가 조절하고 맞추어 놓은 타이머 같은 것이 작동하는 시공간이 됩니다.
약속 시간을 비교적 잘 지키는 편인데도 이렇듯 시간을 쪼개 놓고 내 쪽으로 유리하게 계산을 해놓고 시작합니다.
그것은 어느 곳, 어떤 식으로든 내게 ´유리한 쪽´을 선택하려는 의지를 반영합니다.
끝까지 유리하고자 차라리 불안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딘가에서 길들여진 이 습관은 좋아 보이지도 않은데 좀처럼 바뀌질 않습니다.
늘 신호등 앞에서 불안 아니면 짜증, 그도 아니면 불만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러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장면일 듯합니다.
그럴 것 하나 없는데 왜 그럴까 싶을 것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 - 예를 들면 장난감을 갖고 다투거나 구슬 아이스크림은 누가 먹을 것인지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들에게는 나름 소중한 동작들이 품고 있는 한계 - 거기에는 애상과 허무 같은 것들도 밑에 깔려 있습니다. 귀여운 어린아이들이 허둥지둥 대는 모습은 방송에서 보듯이 사랑스럽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러면서´ 배우는 것들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삶에는 예측 가능한 것들보다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철저히 배우고서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넘쳐납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들, 그것으로 재미 좀 보셨는지요.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 요한 16:2-3
재미는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 되었습니다.
맛이 없는 밥은 먹으려 들지 않습니다.
재미없는 것의 재미가 경 經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도리라고 하는 것, 큰 가르침은 모두 經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니 불경이니 그러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게임에, 어른들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모두들 맛있는 밥, 재미 좋은 것들에 열중입니다.
재미없는 것들의 재미를 알고 맛없는 밥을 잘 먹는 일이야말로 감사할 일인 줄 알겠습니다.
그 힘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 힘으로 살아가는 분들에게 많이 배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