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길 4코스

아빠가 쓰는,

by 강물처럼


중간시험이 끝나면 움직여야지 하면서 날짜를 꼽아가며 지냈다.
나들이 하나도 겨우겨우 해나가는 꼴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사람들이 '코로나 끝나면'을 입에 달고 산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더라는 시를 쓸까 봐 내심 모른 척한다. 그렇잖아도 '변이'라는 말이 서서히 크게 들려오는 거리에 있다. 둥둥둥 들려오는 저 북소리는 어쩌자는 것인지, 기어이 이쪽으로 오겠다는 것이면 나는 무엇으로 맞아야 할지 날마다 어렵다.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 하나를 지나면서 아주머니 한 분을 본 것이 전부인데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하늘도 아까워하며 다 펼치지 않고 이불 하나로 사시사철을 날 것 같은 산골이었다. 미안한 생각에 서둘러 밭을 지났다. 정말이지, 이제 그만 좋아졌으면 한다.

아이들과 모처럼 길을 걸었다. '길'이란 말이 순해졌는지 묻고 싶다. 10대, 청소년이라고 하는 너희는 길에서 무엇을 보았기에 우리와 함께 길을 나서는 것이냐. 그것은 더운 햇살이지 않았더냐, 지루한 계속은 아니었더냐.
산이는 왼쪽 발을 디딜 때 오른쪽 뒷굽에 힘이 들어간다. 그것은 오래 걷기에 좋아 보이지 않는 걸음이었다. 그동안에도 네 걸음을 수없이 많이 봤을 텐데 아무래도 이 코스는 성찰 省察이란 바람이 골짜기로 불어오는 지형인 듯싶다. 아니면 저 회색 돌 빛깔을 품고 흐르는 물이 오랜 세월 그려놓은 그림 탓일까. 우리는 될수록 순하게 찔레꽃 향기를 맡고 맡고 맡았다. 그 밑에는 뱀이 지나간단다, 애들아.

오빠한테 몽정이 뭔지 아냐고 사정 봐주지 않고 턱, 물어오는 딸내미하고 그런 이야기 하면서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자세히도 가르치는가 본데 나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신발 앞에서 톡톡 차인다. 너네 선생님은 여자냐, 남자냐 하고 묻고 싶은 것도 딸이라서 참아내고 그다음, 알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 대신에 서둘러 내가 먼저 말해줘 버렸다. 그러니까 이 산 같은 거다, 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는 지점이 바로 네가 걷고 있는 이쯤일 것이다. 너는 우리가 오늘 골인할 곳이 보이지도 않고 얼마나 될지 감도 없잖아, 다 가고 나서야 돌아봐지는 것이 사람이고 길이고 시간이니까. 여자애들은 7년을 주기로 몸꼴이 변해서 칠, 이 하면 십사, 열넷에 생리가 들고 그러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땅, 여기 땅처럼 고운 것이 된다. 칠에 일곱, 마흔아홉 그쯤에서 땅이 푸석거리는 거야, 그것이 오춘기가 되기도 하는데 아기는 이제 다 낳았다는 것이다. 그걸 폐경이라고 한다. 엄마는 칠에 여덟, 그때가 되면 여자들은 마음도 몸도 힘들어서 갱년기를 겪는 것이지. 사람마다 그리고 지내온 환경에 따라 서너 해는 서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럴 것이다. 앞으로 1시간 더 걸어가면 길은 더 깊어지고 너는 힘들어서 쉬어가자는 말이 아무렇게나 나올 것인데 그것이 그것이다. 나는 어쭙잖게 그리고 시시껄렁한 것들을 교묘하게 짚신을 엮듯이 꾸며대며 살을 이었다. 산 때문이다. 지리산 때문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알아야 하니 더 짚어간다. 남자는, 그러니까 오빠 같은 사람들은 여덟을 주기로 몸이 좋아진다. 16살이면 몸에 양이라는 따뜻한 기운이 차올라 그것으로 정 精을 만든다. 여자가 만든 방에 저 정이란 것이 초대받으면서 아기는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것을 잉태라고 하고 몸 안에 두고 마음으로 먼저 그 아기를 키우는 것이 임신이다. 그래서 임신하면 배도 불러오고 조심하고 그러는 것, 너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니까 뜻 모를 웃음을 짓는다. 저도 여자니라. 입덧이란 말이 떠올랐던가 보다. 그거 토하는 것, 밥을 못 먹는 거 그러면서 묻는다. 그것은 왜 그러냐고 엄마한테 물으라니 엄마는 딴 데를 쳐다본다. 여자의 선생은 여자가 아니다. 그것은 신비다. 뱃속의 아기는 아기여도 아직 아기는 아니어서 엄마가 주는 대로 받고 먹는 대로 먹는데 가끔씩 아기가 먹지 못하는 것,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어서 말 못 하는 아기가 적극적으로 못 먹겠다고 받아치는 것이 입덧이다. 입덧은 경건한 신호이며 거룩한 암시니까 꼭꼭 잘 받아내야 하지, 딸이 12살이 아니라 훌쩍 아가씨가 된 기분도 이 길 탓이다. 지리산 탓이다.




이제 묻지 말고 더 말하지 않겠다고 미리 지름길로 길을 잡는다. 무엇을 물어올지 나는 다 아니까. 여기를 돌아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나는 왼쪽 길로 가는 것처럼 농을 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질색하며 털썩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다는 일은 처량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오르막은 어쩐지 더 쓸쓸하다. 오후 4시 반이 지나서는 그러지 않기로 하고 살아가기를 아빠는 기도한다. 자, 오른쪽이다. 저기 가서 쉬기로 하고 마지막 남은 것들로 목을 축이자. 아이들 걸음을 고쳐주고 제 몸에 대해 일러주는 일과 같이 산길을 걷는 일로 나는 하루의 평화를 얻었다. 일용할 양식이란 걸으면서 먹는 밥이다. 융숭한 대접이었다. 산이 내게 건네는, 내가 길에게, 길은 더 먼 데로 가서 고수레를 하는 인정들이라니.

동강이다.
금계에서 동강까지 잘도 걸었다.
바람처럼 사뿐했고 구름처럼 머무르며 걸었다. 날씨는 날이 낳는 씨, 그 씨앗들이 하늘로 하늘로 높다랗다. 미루나무 한 그루가 손가락 끝에 서 있는 길을 우리는 걸었다, 꽃 보듯 너희를 대한다면 꼭지로 맺을 것도 없다고 하소연하리라. 다만 그래서 좋았다는 이야기는 훗날 이 길에서 바람결에 다시 듣거라. 아빠가 써놓은 인사는 큰 바위 뒤에서 보물이 되었거든 그것으로 부자가 되어도 좋다.

겨우 5월 초, 연한 감잎들이 더욱 인상 깊었던 지리산 둘레길 4코스에는 유령같이 멋진 감나무들이 살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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