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천둥소리가 한동안 이어지더니 잠시 조용합니다.
잠을 깨울 만큼 요란하게 내리는 비는 아닙니다.
날이 밝아지면 어떤 하늘 일지 궁금합니다.
무엇인가를 살피는 자세는 항상 마음을 업고 있습니다.
관심이라고 하는 말에 마음이 붙어 다니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또 ´마음´입니다.
날씨라는 말을 요 며칠 자주 쓰고 있습니다.
날씨에 따라 우리는 많은 것을 옮겨놓습니다.
그중에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도 함께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음악이나 커피, 커튼으로 가린 창, 혹은 프랑스 갈 France Gall의 샹송이나 그대로 한 시간 더 자버리고 싶은... 것들에게 공연히 시비를 걸고 태연히 져버립니다.
예민하게 굴더라도 그것이 날씨 때문이라면 진정제를 건네듯 말을 걸고 바라보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렇구나, 해가 뜨고 비가 오며 바람이 부는 것들이 모두 하나의 씨가 되는구나. ´
그것으로 아이가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풀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월을 먹어가는 벽에 빗물이 고입니다. 그의 하루는 어디에서 어디까지일지 처음으로 궁금해졌습니다.
아, 문장은 붙여 쓰는 게 맞는데 그러자니 묵상이 넋두리가 될 것 같습니다.
비를 뿌리는 오늘 날씨입니다.
무엇이 그 씨에서 솟아날지, 10년 된 기억에 기대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것들을 기다립니다.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 요한 16:8
죄가 많은 내가 떨 때가 있습니다.
자식이 의롭지 못할까 봐, 아니 의롭지 않더라도 불의 不義 할까 봐 조바심 낼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 괴롭히지 마라. 누구라도 괴롭히지 마라.
10년 전,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늘 주문처럼 외웠던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알고서도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차에 태우고 등 하원을 시키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너는 나와 같지 않기를, 그것을 바랐던 것 같습니다.
죄 罪는 무엇입니까.
산뜻한 옷으로 갈아입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맑은 물 냄새가 나고 볕이 충분히 들어 고슬고슬 손에 잡히는 옷.
저 죄를 허물이라고 부른다면 허물은 벗겨져야 새살이 돋는 이치 안에 머물 뿐입니다.
한때는 살이었을 그것으로 얼마나 비비면서 밀고 다녔던가 살핍니다.
마침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립니다.
옷은 씻고 입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입고 나서면 ´심판´은 - 뜻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 능소화처럼 담장을 휘덮고 내릴 것입니다.
봄꽃들이 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것들은 ´날씨´를 먹으면서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