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59

아침에,

by 강물처럼


어제도 아이들에게 그 말을 했습니다.

for example, 이 말이 나오면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너를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는 것은 네가 그것을 알아듣기 바라는 거니까 꼭 붙잡아야 한다고.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사람이 자신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때는 예를 든다.

공부가 그렇다. 모르면 예를 들지 못한다.

친구가 물어오면 적극적으로 설명해라, 타인을 이해시키는 경험을 가져라."

그렇습니다. 알지 못하면 비유를 들거나 예를 들 수가 없습니다.

비교하거나 대조하려면 먼저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 요한 16:18



우리는 모르면서 오해를 합니다. 모르니까 오해를 하는 것이 언뜻 맞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노자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고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병이라고 가르칩니다.

知不知尙矣, 不知不知病矣 - 통행본 장 71장.

모르는 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질병과 같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혼잡한 사거리에서 길을 분간하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방향을 잃다 보니 길은 오히려 번거롭기만 하고 신호며 경적 소리가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조금 있으면´

꼬마 아이들을 달랠 때 썼던 말을 지금도 가끔 써먹습니다.

먼저 길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처음 거기를 지나는 이들에게 건네는 인사가 되기도 합니다.

조금 있으면 엄마 온다, 조금 있으면 끝나, 조금만 가면 다 나와요.

서로 다른 ´조금 있으면´으로 서로를 돕는 마당이 인간적 人間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알려면 먼저 믿어야 하는 조건 하나와 알고서 믿으려는 조건 둘의 경합이 삶이라는 레이스에서는 펼쳐집니다.

칸트의 말처럼 하나는 맹목적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공허로 가득 찰 수 있습니다.

맹목과 공허, 거기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가는 것이 ´길´ 아니었나 싶습니다.

말하자면 ´길´이란 길 자체이면서 길을 찾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결국 그 길을 걸어내는 시간이나 노력, 모든 것의 총합인 듯합니다. 그런 길이 결국 삶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어쩌면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는 부분에서 입장 차이가 두드러질 것입니다.

모두가 원하지만 그 기쁨은 무엇을 말하는 기쁨인지 잠시 탁자를 두드릴 정도의 시간은 갖고서 그것을 희망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쁨은 밖에서 오는 것이 맞습니까,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 맞습니까.

그것은 돈입니까, 건강입니까, 지혜 같은 것입니까,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채워질 수 있는 것이며 언제까지 계속 그럴 수 있는 것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물 한 잔´을 두고 평생 마셔보지만 물맛이 다 다를 것이며 다 같은 물맛이기도 할 것입니다.

기쁨은 그런 것 아닌가.

´조금 있으면´ 그 말씀은 물맛 같은 것 아닌가...



예를 들지 못하고 주저리주저리 맴을 도는 나는 마치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사랑의 노래,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하는 그 노래를 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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