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교육의,

by 강물처럼

우체함에 북중학교發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보내는 사람 강산은 나도 잘 아는 분. 모처럼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렇듯 보내는 편지는 처음이었다. 15년, 어딘가 먼 데를 거쳐 온 듯한 편지가 손인지 혀인지 내밀고 있었다. 그동안 고생이 심했던지 홀겹으로 살집이 잡히지 않는다. 받는 사람, 노 ㅇㅇ 씨도 구면이다. 덕이 많고 차분한 편으로 두 분은 집안에서도 각별한 사이다. 부러움을 살뿐 전혀 질투가 나지 않는 그들은 어느새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단 말인가.

내 이름은 없었다.


거기에 쓰인 각별한 사연이란 다음과 같다.

To. 부모님

엄마 난 엄마에게 화낼 때도 있고 짜증 낼 때도 있는데

엄마는 내가 화낼 때나 짜증 낼 때까지 나를 싫어해 주지 않아서 고맙고

아빠는 내가 시험을 잘 못 보고 돌아왔을 때 화를 많이 내지 않고 다음번에

잘 볼 수 있게 응원하고 충고해 줘서 고맙고 사랑해


스물한 칸짜리 편지지 밑에는 편지지가 부족할 경우, 다른 종이에 이어서 작성하셔도 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강산님께서는 네 줄 편지를 보내셨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한 문장이다. 물론 쉼표나 온점이 찍히지 않았다. 제대로 쓴다면 두 줄, 그리고 바르게 썼다면 이랬을 문장이다.


'언제나 친절한 엄마, 그리고 나를 응원해 주는 아빠, 고맙고 사랑해.'


웃자고 한 장난이 다툼으로 번지는 꼴불견은 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정중하게 이 편지를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실컷 웃고 있는 강산님의 모친, 그분의 내적 구조에 조금 더 관심이 간다. 편안한가, 평화로운가, 아니면 어이 상실?

이럴 때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저 앉은 곳에 구멍이 뚫리지 않기를 내 표정 속에 감추고 빈다. 싹싹 빈다. 나는 이 물을 다 건너가거나 흘러가고 싶을 뿐이다. 비와 바람은 어찌하더라도 물이 새는 일은 없도록 그대여, 꽃을 보듯 나를 살피소서.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는 동안 한쪽 방에서 기척도 없이 쓱싹거리는 소리가 있더라. 문명 창조였거나 천지 창조에 버금가는 동작이 스르릉 스르릉 톱질을 하고 박이 터졌다. 대박이다.


5학년 강이님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서 수상 소감 중에 나를 넣을지 말지 고민하시는 분이시다. 아빠가 글 쓰는 것을 좋아라 하셨어요, 정도의 소개만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것을 말하라 마라 하는 것도 모양새가 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만둔다. 편지가 자그마치 네 통인데 거기에 쓴 글은 모두 5편이다. 엄마하고 아빠한테 편지, 그리고 엄마를 위한 시, 아빠를 위한 시, 마지막으로 지리산이란 제목의 시를 닮은 글.


어떻게 할까, 편지 하나, 시 하나 그렇게 소개를 해보자.

우선 To. 아빠에게

아빠 안녕? 나는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딸! 강이야~

아빠 내가 영어 공부할 때 조금 잘 못하지? 미안해.

내가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 잘할게~

그리고 매일 오빠, 언니들 공부시키느라 힘드시죠?

항상 열심히 하는 아빠가 저는 너~무 자랑스러워요!!

매일매일 하이팅! 그리고 사랑해요~


이렇게 나오면 어른이고 뭐고 쓸데없이 강이님을 혼낸 것만 같아서 미안해진다. 영어 좀 모르면 어떻다고 아빠라는 사람이 냉정하게 굴었을까,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던 뜻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네가 없었다면 5월의 찬란한 햇살을 내가 실컷 감사할 수 있었을까 싶다. 10월에 태어난 강이님은 1년 내내, 언제든 나 같은 사람에게 구원인 것을 아빠가 깜빡 잊었던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예쁜 사람이 항상 옆에 있으니 내가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너무 늦지 않게 아빠를 흔들어 깨운 너는 어느 별에서 온 누구신가요.


엄마를 위한 시, 제목 - 엄마의 인기척 / 강이


내가 태어났을 때 방긋방긋 웃어주던 우리 엄마

엄마의 웃음 인기척에 나도 웃음꽃이 핀다

엄마 얼굴에는 꽃이, 슬쩍 바라보게 되는 엄마 얼굴

고양이가 그려진 부드러운 엄마 잠옷에 푹 잠기면

12살 내 마음속에 날마다 걸어오는 엄마 인기척


강이님이 쓴 것을 살짝 다듬었다. 어디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기척'이라고 써보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자기에게 엄마가 기억되는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듯이 포착하려는 저 아이에게 사랑이 가득하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엄마를 보고 세상을 보게 하여 따뜻한 글을 쓰게 허락하소서. 글보다 사랑을 쓸 수 있도록 돌보소서. 쓰는 것으로 사랑할 줄 알게 하시어 날이 밝아오는 환희와 저녁에 드는 감사 속에 살게 하소서.


어버이날이 지났다.

벌써 5일이나 지나 옛일이 되어 가고 있다. 멀어져 가면 갈수록 그리울 것이다.

저장 공간이, 너희를 기억하는 내 저장공간은 고맙게도 한 모습으로만 채워질 것이다. 그거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주문하련다. 우리는 어느 시대에 어느 별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었던가.

곰곰이 저 강물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연어를 만날 것만 같다.

'부모 미생전 未生前 본래면목 本來面目'이라더라.

우리의 시작이 시작된 물가에는 빛이 초록으로 자잘 자잘 속삭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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