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많은 선생님과 스승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에게 꽃 한 송이 건네고 싶습니다.
스승은 언제든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그 생각의 밑동이 굵어집니다.
귀감이 되는 스승과 제자의 사연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세월을 곰곰 반추하는 일이 싫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인연이란 말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설익은 표정으로 대하지 않아도 되는 이때쯤이 편안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인연이란 말은 ´실´ 絲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연 因緣이 짧거나 길고, 굵거나 가늘 수 있는 것을 별개로 하더라도 어떤 식이든 처음과 끝까지, 전부가 됩니다.
처음, 중간 그리고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선 線이 생겨나면 사람은 그것으로 표현됩니다.
혈관이 사람의 내부를 그리듯이 실낱같은 선들이 나를 그려냅니다.
모든 인연이 나를 통해 하나로 이어진 인상입니다.
그래서 모범이 되는 부부는 사제지간의 정도 나누게 되는 것인가 봅니다.
제가 들었던 가장 훌륭한 부부애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남편이었지만 친구였고 오빠였으며, 선생님이었고 예수님 같았다."
바람과 햇볕과 비와 구름이 꽃나무 하나를 키워내는 것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열매 맺게 하는 것이 인연인 듯싶습니다.
먼 데에서 찾아오는 손님들, 부모 미생전 未生前에 그때에도 있었던 이야기들, 그래서 때로는 내 한계를 넘어서는 사연들 말입니다.
어떻게 좋은 인연만 있겠습니까.
바람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방향을 바꾸던지요. 또 꽃이 필 때를 기다려 하늘에서 내리는 것들은 얼마나 무심하던지요.
인연 하나하나를 배워가야 하는 젊음이 때로는 부러운 생각보다 애처롭게 보이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측은해하는 것도 사람이 가져서 좋은 것 아닐까 싶습니다.
죽이지 마라.
때리지 마라.
그러지 말라고 가르쳐 주는 스승님들이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6:33
그러고 보니 내일은 5, 18입니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인도에서도, 불안이 공포로 둔갑해 버린 미얀마, 또 우리 안에 있는 우리들도 보듬어야 할 상처들.
마데카솔 하나 바른다고 낫지 않겠지만 세상에는 선생님들이 필요합니다. 그거라도 먼저 바르라고 살펴 주는 은자 隱者들의 알뜰한 관심이 인연이라는 실타래가 솔솔 풀리도록 도울 것입니다.
삶을 돕는 인연들은 모두 선생님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