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그 칭찬에 고래가 멍들기도 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칭찬´, 그것에 대한 부작용을 경고했던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칭찬´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워낙 칭찬이 없는 사회에서 그렇게 무뚝뚝하게 지내지 말고 칭찬 좀 하고 지내자는 권유였습니다.
그것이 불처럼 일어나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번지는 것을 놀라운 시선으로 경계했던 것입니다.
칭찬이 좋긴 한데 무작정 덤벼들지 말고, 아이들이 상처 입을 수 있으니까 생각하면서 칭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원래의 것이 힘이 세면 그에 반발하는 힘도 세기 마련입니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지금은 ´칭찬´이라는 말 자체를 들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좋다고 소문이 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기어이 샘이 마르는 것을 보고서야 뒤늦게 후회를 합니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와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그렇고 건강을 해치는 것도 결국은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솜털처럼 많은 날들이 남았는데 무슨 걱정이냐?
로마의 땅이 이렇게 넓은데 어떻게 이 로마가 사라진단 말이냐!
´절정´은 한순간입니다.
아무리 없다고 그러더라도 모든 것에는 절정의 때가 있습니다.
다만 절정 뒤에는 그림자가 길어질 것이고 쇠하며 멸 滅 하게 되어 있습니다.
피할 길 없는 곳에 서서 맞이하는 것이 운명입니다.
결국 하나의 유리창 같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틀이란 것이 있고 인생은 그 안에 창 窓 이어서 얼마나 투명하게 안과 밖을 비추느냐,
나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하냐, 빛은 얼마만큼 바람과 눈, 비는 또 얼마나 내 창에 비추었느냐.
어떤 창은 우주선의 창이 되어 그야말로 높은 데에서 우주를 바라봅니다.
잠수함은 바다 깊은 곳에서, 또 낭만적인 창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소녀의 눈빛이 되어 책을 읽어가는 안경 말입니다.
수정처럼 맑은 렌즈로 깨끗하게 닦인 이층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5월의 숲. 동화 같습니다.
창과 틀은 서로에게 맞닿아 있지만 서로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서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드러내지 않고 감사히 여기지 않으며 그저 하나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무엇이든 먼저 그 역할을 다하게 되면 함께 물러가야 할 것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부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 세상이, 창과 그 틀로 만들어집니다.
덕분에 얼마나 평화로웠는지요.
아늑했으며 고즈넉했고 따뜻했으며 온화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19
솜털처럼 많은 날이 있더라도 오늘은 걸어야겠습니다.
내 창에 빛을 가득 담아서 나를 구성하는 틀을 튼튼하게 해 줘야겠습니다.
내가 나한테 하는 선물입니다.
걷다가 만나는 것들을 잠깐이라도 ´진리´라 부르겠습니다.
누군가 칭찬해 준다면 살짝 웃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