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삶을 커다란 행운의 기회로 여기는 까닭은
아침마다 햇살을 그리고 저녁마다 어둠을 맞이하는 이 위대한
행복을 매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中.
프랑스 철학자의 말이 어떻게 느껴지시는지요.
좋지만 생소할 수도 있고 흔한 말인데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부 쉰아홉 글자로 된 문장입니다.
저기에서 어떤 말에 끌리시나요?
사람이 저마다 다른 매력을 갖고 또 느낀다는 사실은 뭔가 우주적인 존재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인간적이란 말은 해가 뜨거나 어둠이 깃드는 자연에서도 따뜻한 피를 떠올리게 합니다.
온기가 있으며 세레나데를 연주할 줄 아는 빛들이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생명 말입니다.
그 순간만은 따로 ´신적 神的´인 것에 무심해집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빠진다는 표현은 정말이지 극적 대사입니다.
누군가는 명사를 찾고 어떤 이는 동사를 찾아냅니다.
저처럼 무용 無用 한 것들에 빠진 이는 실체가 없는 ´위대한´ 앞에서 멈춥니다.
높고 견고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신념, 신앙, 바람같이 보이지 않는 ´행복´을 지키는 그 마음에 편들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위대하지 않더라도 그래서 작고 볼품없는 행복이더라도 내가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멋진 해가 뜨기를 기다려 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끼리라도 얼마든지 멋지게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을 간직하고 싶은 것입니다.
자운영이나 인동초나 미모사 같은 것들도 위대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나여도´ 괜찮다면 말입니다.
비루한 감정들은 모두 떨치고 하나의 편이 되어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 같은 걸음에 투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내가 좋아 보이는 위대한 순간을 어떻게 맞을까, 과연 예순이 되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마르코 10:31
다행인 것은 첫째도 꼴찌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게 내게 남은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바람이 불고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 새벽에 잠시 묵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