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9
조금 놀랍기도 한 숫자입니다.
오늘 아침 묵상을 다 적고 나면 저 숫자에 하나가 더해집니다.
저는 4,000번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5년 전, 옆 침대에 누워있던 젊은 친구에게 적어 보냈던 그 글이 가끔은 궁금합니다.
뭐라고 적었을까.
어떻게 적었길래 나는 계속 이렇게 적어낼 수 있었을까.
우리 세대에게는 휴대폰이 참 대단한 물건입니다.
그 두껍고 무거운 사전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외국어 단어를 찾을 때마다 고마워합니다.
한자를 금방 찾아서 그 뜻을 알 수도 있고, 정말이지 그 혜택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때도 저는 휴대폰에 무엇인가를 적어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지금처럼 기도를 할 생각은 못 했고 생각날 때마다 위로나 힘이 되는 말들을 공유하는 정도였습니다.
1년 반이 지날 때쯤 - 2018년 3월 8일 - 그때서야 비로소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3년 동안에 4,000개의 글을 쓴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날, 그 생각 하나는 절묘한 곡선이었습니다.
그 뒤로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매일 무엇인가를 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글을 쓰는´ 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들이 잘 아는 욥기 8:7 - 자네의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
그 말을 저도 말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나아지고 좋아지는 것,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제자의 -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 간청이 이루어지는 그런 마당을 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글이 영광스러워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기도가 간절함으로 완성되면 그뿐, 거기에는 살려는 의지나 살려내야 한다는 각오, 그런 것들이 배경이 되지 않기를 감히 바랍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컷 기도하고 원하고 바라는데 무슨 소린가 싶을 것입니다.
바람이 없는 바람,
기도하지 않는 기도.
쓰는 일 없이 쓰는 일기를 그리워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00쯤 되었을 때는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하나의 성과처럼 보였습니다.
더욱 분발하고도 싶었습니다. 우쭐했습니다. 하지만 기도나 글이 그 모양이어서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2,000이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을 4,000이 넌지시 웃어 보이는 아침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르코 10:43
사람이 하는 일은 금방 시들고 말 것입니다.
저도 곧 멈출 것입니다.
그런 말 좋아합니다.
´운명이 나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5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또는 10년 전, 20년 전이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
오늘이 10년 후, 20년 후의 내가 바라보는 바로 그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