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이가 다시 보게 되는 장면입니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극적이며 감동이 물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상징´이라는 장치를 통해 바라볼까 합니다.
우리는 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말과 글은 생각과 마음처럼 이란성쌍둥이로 세상에 나옵니다.
생긴 모습은 다르지만 많은 부분들이 서로 닮았으며 그 유전자는 거의 일치합니다.
말에 주목해서 ´보이는´ 눈으로 달려가 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말이지만 하나를 의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뉜다는 말은 세상은 그것들로 이루어졌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루어진 것은 나누어집니다.
나눠질 수 있는 것은 하나였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무렵에 배웠던 나누기와 곱하기 그것의 원리입니다.
그것을 세계나 우주,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개체가 되는 꽃이라든지 나무에 적용시켜 보는 것입니다.
연습 삼아서 ´나´를 그 식의 대상으로 삼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참선과 명상은 그 나를 끝까지 나눠서 자연 상태로 날려 보내는 훈련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벼움을 맛보면서 가벼움을 요리할 마음과 그 레시피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지 못했지만 - 경험에는 절실하고 막다른 위기감, 절망이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 그것이 어떤 것인지 간접 체험 정도는 해봐서 - 그런 의미로 본다면 어둠이 세상의 반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또한 감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 누구나 얼마간 두렵다는 감정을 ´보이지 않으면´ 떠올리게 됩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아는 것은 있습니다. 원래 그랬던 것들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더 이상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알던 그대로, 세계는 굳어집니다. 다음에 일어나는 변화는 100%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변화는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내가 참여하지 않는 변화는 수동적이며 부분적이고 상대적일 뿐입니다.
원래부터 그래 왔던 것들, 겨우 아는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 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의 실체입니다.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처리하면 통념과 상식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편한 느낌을 우선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여태 해왔던 것들이라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튼튼하고 단단하며 견고합니다. 누군가 잘못 건들면 크게 혼이 나고 말 것입니다.
눈먼 이는 그렇게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 이가 예수님께 외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마르코 10:48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과감하게 겉옷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겉옷은 ´겨우´ 그것이면서 ´중요한´ 그것입니다.
겉과 옷이 바로 그 성질입니다.
한 인류학자에 따르면 인류가 직립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영장류와 다르게 성기의 노출을 경험해야 했고 옷은 보온이나 보호 차원이 아니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먼저 필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부분은 창세기의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겉은 자주 변하는 재산이며 옷은 수치스러움이나 부끄러움입니다.
하지만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 ´정체성´, 한 사람의 아이덴티티 Identity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를 버리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용기를 눈먼 이가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그다음은 과연 인간적이며 동시에 신적인 물음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한 생애에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기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 마르코 10:51
우리는 무엇인가를 자꾸 ´준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내가 설명해 줄게, 내가 만들어 줄게, 내가 사줄게, 예뻐해 줄게, 심지어 죽여 줄게라고 웃으며 말합니다.
주는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선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열어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조하는지도 모릅니다. 혹시 잊어버릴까 자꾸 주면서 말입니다.
´내가´ 해 준다고.
´실질적인 도움´이란 말이 쓰이는 것을 보면 늘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돕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마르코 10:52
우리가 말하는 ´실질적인 도움´과 예수님의 그 도움은 어떻게 다른지 다음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 마르코 10:52
보이지 않던 그는 그의 통념과 상식에 의지해 살다가 온통 송두리째 그것을 바꾸는 대전환을 경험합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땅에 꽃이 피고 곡식이 맺히는 실질적 도움이 내렸습니다.
생명이 다시 파닥거리는 장면입니다.
다시 본다는 것은 그런 세계로의 여행이며 초대입니다.
순전히 문학적 자세로 상징을 통해 복음 말씀을 바라봤습니다.
혹여 불편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대로 잘 녹여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몸은 신기한 것이어서 스스로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 궁리한다고 합니다.
물이 다른 때보다 맛있다면 그만큼 갈증이 났다는 것입니다.
말씀이나 진리 또한 그럴 것입니다.
실질적이라는 말도 새삼 꺼내놓고 다시 만져봤던 새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