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힘들 때 왜 날 낳았냐고 원망해서 미안해
엄마 새끼보다 내 새끼가 예쁘다고 말해서 미안해
언제나 외롭게 해서 미안해
늘 나 힘든 것만 말해서 미안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자주 보여 드리지 못해서 미안해
늘 내가 먼저 전화 끊어서 미안해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안 자고 남편이랑 자서 미안해
엄마의 허리 디스크를 보고만 있어서 미안해
괜찮다는 엄마 말 100 퍼센트 믿어서 미안해
엄마한테 곱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잘나서 행복한 줄 알아서 미안해
늘 미안한 것투성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건
엄마,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 고혜정, 엄마 미안해
어제 병원에 다녀왔다.
10년 차 환자는 기분이 좋아서 생색을 낸다.
샌드위치를 파리바게뜨에 가서 하나 사 오더니,
비싸다고 한사코 거부하던 엔제리너스에서 캐러멜 마끼아또를 사셨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은 한 해 전에 받아놓았다.
다, 준비해놓고. 알았으니까, 올해는 땅콩만 많이 심어놓고 다른 것은 안 심을 거니까.
언젠가부터 엄마가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하고 마주 보지 않는다.
따로 보험도 들어놓은 거 있으니까, 할 거면 빨리하자는데도 딴청이다.
고집 센 사람이 인정이 많으면 2백 년 된 둥구나무 닮는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것이 하루 이틀이었을까 싶지만,
나는 큰 바람이라도 불까 싶은데 나무가 되어가는 엄마는 끄덕하지 않는다.
수술이 무서운 걸까.
아니지, 속에 걸리는 것이 많으니까 그러는 것이지.
우두커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막내아들이 우선 그렇고,
아침마다 휴지를 줍는 노인 복지 뭐라고 하던데 그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다.
밭이야 핑곗거리밖에 되지 않는데 자꾸 그것을 앞세워서 주저하는 까닭은 뭘까.
내가 어정쩡하게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이고 엄마는 왜 그럴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화심 순두부를 굳이 걸어가서 사 오셨다.
오래 알고 지낸 약국 여직원에게 하나 건네고 나도 하나 갖고 가서 먹으란다.
애들 사주라고 치킨 값 만 오천 원을 운전하는 옆에다 꺼내 놓으신다.
설날 지내면서 돈이 좀 생겼던지 말에도 힘이 들어있었다.
만 오천 원 치킨은 없다니까, 그려? 놀라면서도 비싸다고는 않으신다.
오천 원을 더 꺼내놓으면서 애들 꼭 사주라고 한 번 더 다짐을 받는다.
그게 뭐라고...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 요한 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