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66

아침에,

by 강물처럼



뒷자리에 앉은 12살짜리가 말을 걸어옵니다.

"아빠는 지금도 말하기 싫어?"

그 말이 반갑습니다.

"아니."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고 나면 상황은 제멋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술이 술을 마시는 시간대가 그래서 위험합니다.

저도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지 차분하면서 정밀하게 쇠를 연마하는 기계처럼 밀고 들어옵니다.

"나도 아빠 마음은 알겠는데 오빠가 다리를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은 아니잖아."

사실 이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웃었습니다.

- 어쭈 제법인데..... 그럴듯한 명분을 대지 못하면 딸한테 창피당하겠다. -

"아니, 약속을 언제부터 했냐? 먼저 가자고 그래 놓고 그러면 기분 나쁘지."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입니다.

모처럼 시간이 났고 그 시간을 잘 보내고 싶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게 화날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그렇게 전개됐다. 하지만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탓에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서 꺼내놓는 말의 상태를 보면 사고가 났던 현장을 직감하게 해 줍니다.

궁색하거나 이치가 닿지 않고 순전히 변명조로 들리는 특색이 있습니다. 빛을 잃거나 변색되는 말들은 사건을 대변합니다.

대신 상황이 다급하게 전개되는 속에서도 뚜렷하게 자신을 잃지 않고 필요한 곳에 필요로 하는 만큼 제공되는 말도 있습니다.

그 말들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며 말을 품었던 사람의 뜻을 살립니다.

특히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은 시간을 두고 분명하게 갈리는 대표적인 말입니다.

푸석푸석해지거나 반질반질하게 윤이 납니다.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딸아이는 그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아니, 이야기도 재미있게 하면서 많이 걸었으면서 아빠가 그러니까 어제, 오늘 다 불편하잖아.

나는 무슨 잘못이라고 밥 먹을 때 말도 못 하고 계속 내 방에만 있었잖아."



몇 번을 말해도 딸아이 말이 맞습니다. 이쯤에서 미안하다 그러면 되는 줄도 아는데 그냥 한 번 더 대꾸를 해봅니다.

"그래도 사람이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됐으면 미안하다느니..."

아차, 말을 하다 말았습니다.

나한테 해야 하는 말을 내가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이 겹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고 마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동차 접촉 사고만 보험에 들어 둘 것이 아니라 감정 같은 것은 또 어떨까 싶습니다.

마음이나 감정같이 하루키 소설에서 교묘하게 다루는 그것들은 어디에 접수시켜 놓아야 그나마 안심할 수 있을지요.



자고 일어났더니 허리가 불편합니다.

의자에 앉지 못하고 누워서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서 다리가 아팠던 아이의 편이 되어 생각하게 됩니다.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내가 살아온 세월은 아파도 ´하라´고 가르쳤다면 아이가 지나온 시간은 아프니까 ´멈춤´ 표시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 차이를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 ´나처럼´ 하지 않는 것에 불만이었던 것입니다.

나와 같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렇게밖에 처신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자격 미달입니다.



오늘은 아침 식사를 더 맛있게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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