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행복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에게 행복은 최고의 가치인 듯 보입니다.
행복하십니까.
저 말은 잘못됐습니다.
´행복하여라´
이렇게 말하면 법 法에 어긋난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어쩌지 못합니다.
사람의 심정이 현실을 극 克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에는 큰 대로변에 떳떳하게 나설 것입니다.
불법도 아니고 위법도 아닌 날에 형용사 ´행복하다´는 기꺼이 명령형이라도 불사할 것입니다.
너만 행복해진다면 어미는 아무 소원이 없다는 간절한 바람처럼 그렇게 부탁하고 명령할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예뻐라´
´좋아라´
사람들이 쌓아놓은 것들에는 저런 형용사들이 듬뿍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형용사들은 모두 소원처럼 바람을 입고 있습니다.
건강해라, 여유로워라, 자유로워라, 멋있어라. 계속 그렇게 이어집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소원도, 그 어머니들의 어머니들 소원도 거기에 있습니다.
어쩌면 지구의 환경이 이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결국 제 길을 찾아가는 것은 오랜 세월 우리의 부모들이 쌓아놓았던 마음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위해 무엇을 남겨놓아야 할지 모범을 보여주는 것들 말입니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돌탑 하나에도 기도 같은 마음들이 거기를 지키는 것 같아 숙연해집니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소원했을 그것에 방해될까 봐 발소리도 조용하게 그 앞을 지나갑니다.
마음이 가난하신지요, 슬프고 온유하며 의로움에 주리셨는지요.
자비로우신지요. 마음은 깨끗하신지요. 평화를 이루고 계시는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 5:12
법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법은 사람을 보호하고 사람은 법을 지키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은 계속해서 완전한 법을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희망인 듯합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바람을 다 품고 있으면서도 여유로운 법을 상상합니다.
탈무드는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꿈이라고 일러줍니다.
연애편지 같은 그것을 우리에게 매일 보내 주는데 정작 우리는 겉봉도 뜯지 않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편지를 읽고 싶어졌습니다.
내가 가진 형용사에 날개를 달아 놓아줄까 합니다.
그러면 명령하거나 바라지 않아도 더 높이 자유롭게 비행할 것입니다.
나를 비추는 햇살이 내 바람도 함께 비추고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을 믿는 것.
그래서 외롭지 않다면 행복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 맞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