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역지사지 易地思之는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그것만 잘해도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나 혼자 산다고 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상에서 관계는 필연적입니다.
수많은 관계를 오늘도 경험할 것입니다.
민원을 처리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민원을 제기하는 처지일 수도 있습니다.
배워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입장이라는 것도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관계는 이해의 산물이 아닙니다. 여기서 조금 어려워집니다.
모든 상황은 기본적으로 이해를 요구합니다.
지금까지 길을 걸으면서 뒤처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앞서 걷다가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어느 정도 가까이 왔다 싶으면 다시 길을 재촉하며 걸었습니다. 어떻게 보이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기적일 수도 있고 혼자 그렇게 갈 거면 뭐 하러 같이 왔나 싶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가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 중에 오롯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길 안내´ 뿐만 아니라 ´시간 안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길에서 리더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놓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리더가 필요한 상황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리더보다는 동료, 동행, 걸음을 맞춰 걸어주는 사람이 사람들에게는 더 많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리더는 곳곳에 존재합니다.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나 리더가 되려는 것은 어디에서 온 생각이며 습관인가 싶습니다.
어지간히 깊은 산 아니면 앞서고 뒤서는 차이는 미묘합니다. 그래서 앞만 보고 가는 그 사람이 깊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뒤에서 보면 저 혼자만 막 가는 것 같아 얄미운 생각마저 듭니다.
저는 이것을 뒤에서 걷다가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전에는 뒤처져 걷는 사람의 기분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또 알았습니다.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적극적인 노력이구나...
이해는 그런 노력에서 생겨납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 정말이지, 틀린다는 말하고 혼동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 어떤 성과를 냈을 때 그것을 평가하는 자세는 중요합니다. 앞에서 말한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라는 역지사지는 원래 모습은 ´역지즉개연 易地則皆然´입니다.
´누구라도 그 상황이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
어딘가에서 들었던 말 아닙니까?
같은 이해라고 하더라도 더 인간적이며 자연스럽게 들리지 않는지요.
사람을 구한 현장에서 그 당사자들이 앞에 마이크에 대고 했던 말들입니다.
저런 식의 이해는 머리로 하는 것입니까,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까.
사람을 구하러 물속으로,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누구의 무엇이 하는 일입니까.
아무리 명석한 머리를 가졌다고 해도 이해되지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관계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맹자는 한 걸음 더 우리 옆으로 붙어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가 물에 빠졌는데 그것이 나다´라며 그 위태로움과 슬픔을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의 굶주림을 자기의 굶주림으로 여기는 인정을 깨우칩니다.
인익기익 人溺己溺, 인기기기 人飢己飢가 바로 그것입니다.
리더이기 전에 여기서부터 걸을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기기기 人欺己欺 - 다른 사람이 사기를 치면 나도 사기를 치는 -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세상이어서는 안 됩니다.
빠르게 가고 높이 오르려면 얼마나 튼튼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압니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하나가 높이 오르려는 것보다 멀리 가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그것도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쉬면서라도 가볼까 합니다.
이런 슬로건 어떨까 싶습니다.
인기기기 人祈己祈,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나도 기도한다.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마태오 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