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83

아침에,

by 강물처럼

아직 서른이 되기 전이었으니까 이제는 희미해질 것도 같은데 그날 점심 먹기 전이었고 철학과 남학생이 반듯한 자세로 발표를 마친 뒤였습니다.



"왜 배우지?"



아뿔싸, 몇 안 되는 학생들이 비평 수업 중이었는데 교수님께서 일일이 물었습니다.



각양각색의 대답들이 이어졌고 살짝 따분한 기운을 감추느라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표정에 더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때도 예쁜 여자한테는 더 지극했으니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눈썹이며 이마, 콧잔등 같은 데를 바라봤던 듯싶습니다.



"저는..."


일부러 뜸을 들입니다.


오른손 검지로 눈 밑을 슬쩍 건드리면서 주의를 2밀리그램 끌어모읍니다.



그 순간 솔직하고 싶어졌습니다.


하루키처럼.



"저희 부모님은 학교에 다니지 못하셨습니다. 군대에서 아버지 편지를 받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수고롭게 살아내셨구나...



아버지 글자는 미완성이었습니다."



주변의 시선들이 호기심으로 동글동글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았어, 이대로 가는 거야!



"저는 잘 읽기 위해서 배우는 것 같습니다. 누가 내 앞에서 나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싫습니다. 자존심이 요동칩니다. 욕심인 줄 알지만 저는 다 알아듣고 싶습니다."



우리 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과, 특히 불어과 여학생 몇은 지금 생각해도 꽤 멋있어 보였습니다.



분위기 있게 마무리를 하면 된다.


나머지는 그들에게 맡겨놓고 여기에서 내려가면 끝이다.



"아버지 편지는 내가, 자식인 내 안에서 완성되는 문장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부족한 것들을 이어주고 메꿔서 평범하게 짓고 싶습니다. 그것이 아직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라면 얼마든지 배우고 싶습니다. 아니, 배워야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는 내 등 뒤로 내 모든 감각이 사람들의 시선을 즐깁니다. 스포트라이트였으면 좋겠는데 천연 天然이었습니다. 청춘이었으며 빛나는 웃음기들이 반짝반짝 소곤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마르코 4: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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