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85

아침에,

by 강물처럼

비를 맞으며 하루를 걸어보는 상상을 합니다.


일부러 비 오는 날을 골라서 밖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길을 가는 도중에 비를 만나면 반가울 것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여름에 누리는 혜택 같은 거 아닐까 싶습니다.


비 맞고 돌아다니는 걸 상상하는 것이 아직 철이 덜 든 것이 맞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철들고 싶지 않아서 혼자 노는 것도 같습니다.


어릴 적 친구도 어른스러워서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나가는 일 같은 일은 더 없습니다.


정지용의 향수 鄕愁에 나오는 그런 대목 말입니다.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름 울음을 울고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말입니다.


누구의 그림인지 몰라도 평화로운 그 느낌이 좋아서 그다음 부분도 종종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눈으로 따라간 풍경, 기억하시나요 아니면 그런 곳을 알고 계시나요.


저는 거기가 어디쯤일까, 우리 아이들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면서 꿈속의 꿈을 그리던데, 늘 이 대목이 궁금했습니다.


´함부로 쏜 화살 / 풀숲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본 적도 없는 그곳이 저는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거기를 찾아가는 여정이 어느새 저 자신이 된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철이 들지 않은´ 그 색감이며 그 질감으로 그곳에 닿고자 배를 띄웁니다.


어딘가의 어디가 될 거기에 닿을 수 있는 배는 은하수 같은 물을 타고 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이 거룩한데 허공에 떠서 하늘을 흐르는 그 물이야 얼마나 깊고 영롱하며 반짝이겠습니까.



저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먼 곳을 그리고 있나요.


아, 비!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 5:48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침례교회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희랍어 bapto, 담그다´가 눈앞에서 펼쳐졌습니다.


<요르단 강가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다. >


물은 존재를 살립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짐승이든 생명 있는 것들은 물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것을 마신다고 합니다.


가톨릭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성찬 의식입니다.


그중에서도 여기입니다.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 또 잔을 들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라고 선언하시는 모습입니다.


피는 물과 같고 물은 피와 같아서 거룩합니다.


누구나 그것을 마시고 거기에 몸을 담그며 살아갑니다.


크리스천이란 말은 - 저는 정말 잘 모릅니다만 - 예수님 안에 몸을 담금으로써 계약을 맺고 예수님의 피를 마심으로써 그분과 한 몸처럼 살아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온 세상의 세례식을 지켜보는 기분에 빠지기도 합니다.


여름날 쨍쨍한 볕 속에서 타들어가던 땅이며 개울에 빗줄기가 긋기 시작하면 그것이 마치 화살 같아 보입니다.


전쟁터에 쏟아지는 그런 화살이 아니라 어디 신화에 등장하는 큐피드의 화살이나 얘들 놀잇감으로 그만인 그것 말입니다.



혹시나 서툰 이야기를 꺼내거나 허튼소리로 떠들지나 않았을까 조바심을 냅니다.


종교를 설명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성직자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장삼이사일 뿐입니다. 다만 제 생각과 느낌을 나누고 그것이 기도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마태오 5:45-46



부족한 생각을 가만 들어봐 주는 일은 고마운 일입니다. 덕은 그런 곳에서 쌓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 늦은 인사지만 오늘은 이쪽으로 흐릅니다. 이렇게 봐줘서 늘 고맙습니다. 할 일 없이도 바쁜 것이 사람 사는 일인데 아침마다 길을 막고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때때로 합니다. 그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무심하게 가던 길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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