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있는 수많은 이름 중에 어떤 이름이 서글프게 오래 남던지요?
하찮은 돌멩이도 뭔가 단단한 느낌은 있습니다. 슬픔, 분노, 서러움 같은 이름들이 안돼 보이기는 하지만 바람이 불고 세월이 가다 보면 그들도 살아내려는 의지를 보입니다. 물도 좀 마시려고 하면서 기운을 차립니다.
저에게 묻는다면 ´하루살이´라고 답하겠습니다.
물론 그 이름에도 나고, 자라고, 날아다니는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역부족이며 아쉬운 것 같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 같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너는 하루살이다, 나는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그리고 그다음, 다음다음에도 산다.
하루살이가 곧 지천으로 날아다닐 것입니다.
실제로는 한 사나흘 정도 산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일생입니다. 그동안에 친구도 사귀고 애인도 만들고 결혼, 육아, 다른 거 다할 것입니다. 먹고 사느라 바쁘다고도 할지 모릅니다. 매일 비만 온다고 하소연할 수도 있습니다. 젠장맞을 팔자라고 소리치며 아우성인 것들도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집도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연금은 어떻게 하고 사는지, 거기까지는 감히 감 感이 오지 않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 마태 6:5
저는 기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기도하라고 그러면 먼저 숨어버리는 못난 구석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기도해 본 적은 지금까지 한 번 있었습니다. 그 기도가 끝나고 옆에 있던 여학생이 했던 말이 생생해서 가끔 혼자 웃기도 합니다. "교회나 성당은 안 다니셨나 봐요."
혼자 있을 때는 곧잘 하는데 나이가 들어도 영 좋아질 기색이 안 보입니다.
제 경험상 기도하기 좋았던 곳은 전라도 영암 월출산 정상에서 도갑사로 내려오는 5시간짜리 코스였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다를 것입니다.
해마다 한 번은 거기를 걸으면서 진짜 기도를 합니다.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다가 운 적도 있어서 제가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는 그 느낌 조금은 압니다.
지금은 그때만큼 우는 일은 없는데 대신 하늘이 참 맑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속을 거닐다 오곤 합니다.
지난해는 알리의 노래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 노래 제목이 생각나면 묵상 끝에 함께 동봉하겠습니다.
´하루살이´라는 이름이 어떻습니까.
마음에 슬쩍 내려앉는 어떤 것이 있는지요.
죄송하지만 좀 길게 가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보면 시제 時制가 꽤나 중요한 파트가 됩니다.
흔히들 말하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것입니다. 영어에는 우리말에 없는 특이한 시간이 하나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 들어보셨을 ´완료 시제´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현재 완료 그러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려 하지 않으신지요.
가능한 짧게 정리하겠습니다.
완료 시제는 두 시점을 선으로 연결해 놓고 그것을 하나의 시간대로 바라보는 시스템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를 그어놓고 그것을 하나의 뭉텅이로 처리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단 하나의 단어 ´ have/ has ´로 해결해 버립니다.
He lost his bag. 그러면 그는 가방을 잃어버렸다로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을 He has lost his bag. 단 한 단어를 덧붙이는 것으로 ´그는 가방을 잃어버렸는데 지금 그 가방을 못 찾고 있다. ´는 말까지 깔끔하게 처리를 해버립니다. 그게 완료 시제의 묘미이며 매력입니다.
여기, 이 말을 하려고 제가 어쭙잖게 떠들었습니다.
하루살이의 시제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제는 완료형 닮았습니다. 그래서 하루살이가 모르는 시간도 우리는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계절을 모르고 1년을 모르지만 우리는 여름과 겨울도 알고 그다음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완료형의 시제로 우리를 바라보는 존재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루살이인 것을 절대 모를 것입니다. 하루살이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마태 6:6
사는 일이 기도라고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정작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안다면 - 가능하지 않겠지만 - 우리네 장바구니에 담아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만 물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루살이가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