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87

아침에,

by 강물처럼

그런 생각이 듭니다.


누구라도 한 번은 들어봤을 기도가 오늘 나왔구나.


이것도 종교를 가진 제 입장에서 바라보는 거라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 들어봤다든지 아니면 그런 입장마저 표명하고 싶지 않은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고마움도 그쪽으로 뻗습니다.


왜냐하면 듣기 싫거든요.


아무리 좋은 소리라고 해도 내가 관심이 없거나 모르면 시끄럽고 성가실 뿐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끊지 않고 이렇듯 매일 아침 받아주시는 것은 정성 아닐까 싶습니다.


봐주지는 않더라도 거절하지는 않는 그 마음이 좀 멋지십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어떤 일을 계속하면 신기한 구석들이 생기는 듯합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건 대부분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공통 현상이기도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나 고미숙의 글이나 이름 꽤나 알려진 심리학자나 누구 할 것 없이 사람들을 ´관통´하는 손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고전이라고 하는 작품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손으로 사람의 마음을 만지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기도 합니다. 그러니 공자님 말씀은 오죽할까 싶고 성경이나 불경의 거대한 숨결을 어떻게 감당할지 생각만으로도 벅차오릅니다.


날마다 책상 위로 쌓이는 것이 저의 무지함입니다.


그리고 그 무지함 위로 요정처럼 춤추는 작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창 窓과 같은 것입니다.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자그맣게 챙긴 유리창에 햇빛이 들면 종알종알 속삭임이 들려옵니다. 어릴 때 불렀던 그 노래,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 같은 거 말입니다.


제 게으름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고 늘 시작인 것을 반짝반짝 비추면서 알려주는 기도가 되는 말들이 생겨납니다.


그 말들은 모음과 자음으로 이루어진 형태가 아니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씩 남겨준 바람 같은 것들이 우연히 내려앉은 그루터기를 닮았습니다. 큰 나무가 있었던 흔적 그것은 멀리서 보면 점 하나로 세상에 찍혀 있습니다. 그 점들이 하나 둘 연결되어 말을 형성하고 그 말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됩니다. 그림을 읽는 아니지, 그림을 풀이하는 미학적 유희라고 하면 병원을 소개해 줄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즐거운 작업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 그 신비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잘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거기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착각이면서 감각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물이 흘러가는데 눈치 보며 흐른다면 멋스럽지 못합니다. 나는 물이고자 하니 그대도 흘러라, 이백 李白이 아니어도 그렇게 불러보고 싶습니다.



사실 오늘은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어제 아침 늦장 부리면서 밥을 먹던 12살짜리가 저에게 묻던 말이 하도 좋아서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내일 아침 기도를 적을 때 꼭 써놓을게, 잊으면 안 되니까 적어놓아야겠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그것도 하루키의 책 표지에 볼펜을 들고 흘겨 적는 저를 보면서 딸아이는 의기양양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좋은 거야? 싶은 표정이었습니다.


이런 거 놓치면 안 돼.



왜 무슨 생각을 하다가 그게 궁금했을까요.



"아빠는 음악 같은 친구가 있어?"


쿵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거야말로 소리 없는 아우성, 발 發 하지 않는 생기 生氣 아닌가 싶었습니다.


있고 없고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그런 생각을 못 해봤습니다.


뭔데 싶어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힐끗 딸아이를 돌아보는데 연발로 묻습니다.


"아빠는 지구 같은 친구가 있어?


꽃 같은 친구가 있어? 밥 같은 친구는? 지니 같은 친구 있어?"


힝,


그 물음이 사랑스러워서 어린애처럼 힝, 그랬습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런 친구가 되어 본 적이 없고 그런 질문을 가져본 적이 없다.


고마웠습니다.


내일 아침 기도를 적는데 한결 수월할 것도 고맙고 그런 멋진 생각을 하는 아이도 고마웠습니다.


잘 살아야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주의 기도´는 그럴 때 힘이 되는 기도였던 거 같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이 앞에 놓였을 때, 막다른 골목 끝으로 오고 말았을 때, 다른 사람들은 다 웃고 있는데 나 혼자 눈물이 날 때, 그럴 때 저절로 나왔던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했다고 할까요, 그렇게 됐다고 할까요. 마치 사랑에 빠지는 순간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기도의 미덕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한 번 따라 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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