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로 만들어지거나 태어난 것들을 옳게 바라보는 소설은 어떨까요.
부끄럽지만 제가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몇 가지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싫어하는데 저 같은 사람이라도 가운데 서서 우리와 일본, 양쪽이 좋아질 만한 부스러기 같은 거라도 찾아야겠습니다. 그것이 비록 거대한 파도를 손으로 막아서는 것처럼 어리석게 보이겠지만 의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긴 모습 그대로 끝까지 가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습니다. 지금 좋지 않은 것이 더 나빠질 수도 있지만 계속 그렇게 나빠지고 난 다음에는 결국 다시 회복하려 할 테니까요. 정치도 사람이 하는 일이고 전쟁도 사람이 일으키고 평화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공을 들이는 것이야말로 숭고한 일입니다. 교육이든 가정이든 모든 것이 사람 하나 잘 키우려는 노력 아니겠습니까. 이다음 세대에서라도 현명하게 그리고 애정을 갖고 우리의 문제를 풀어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것이 그런 분쟁이나 악감정 같은 것뿐이라면 그 또한 분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 양념처럼 함께 버무려 내놓습니다. 못 먹을 것을 섞는 것이 아니라 몸에 좋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먼저 제가 먹어보고 내놓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일본´이라는 글자를 일방적으로 외면하지 않는 일,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그쪽으로 돌아앉아 보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저 단순히 ´하루키 선생´을 꺼내려고 했는데 이처럼 우리와 일본은 설명할 것이 많은 사이입니다. 어색한 두 사람을 초대하는 주인은 긴장하기 마련입니다. 초대가 즐겁게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요..
저는 요즘 하루키 선생님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있습니다. 소설책 읽듯이 읽다가 자세를 바꿔 얼마 전부터는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책은 번역이 되어 나와있습니다. 말하자면 세심히 바라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 이것을 하루키 식으로 이야기하면 ´운이 좋게´ - 아침 묵상을 정말 잘 고른 것 같습니다. 하루키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35년간 매일 아침 400자 원고지 10매를 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식대로 하자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 일은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가 알려주는 여러 가지 소설 쓰는 비결을 하나하나 저한테 비춰보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고개가 끄덕여지고 어떤 것은 아쉽고 또 어떤 것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고맙고 반갑고 기쁘면서 이래도 돼? 그러면서 그의 인류애가 뜨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
책이 얼마만큼 팔리느냐는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일입니다. 우아하게 헤엄치고 싶으나 물밑에서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커튼 뒤에 감춰진 현실, 실감 實感나는 그것이 주도권을 잡고 방향도 속도도 마음껏 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키의 토로를 한 줄씩 받아 적으면서 저는 그의 국적이 다른, 본 적 없는 제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사람의 말을 받아 적는다는 것은 제자다운 발상 아니겠습니까.
소설 쓰는 테크닉을 배워볼까 했다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 같은 것을 마주친 기분입니다. 마치 천왕봉만 생각하고 걷다가 새벽이 아침으로 일어나는 산 기운과 하늘 기운에 내 몸이 두둥실 떠가는 느낌입니다. 고마운 것을 만나면 고마운 줄 아는 것이 지천명에 배운 교훈입니다. 그것이 정말 지천명 知天命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오늘은 어머니가 수술받으러 입원하는 날입니다. 정신이 선명하지 않으신데 수술이 무섭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습니다.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성사´를 받아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신자들에게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성당에 다니신 분이십니다. 부족한 것은 많지만 그것 하나는 갑부이십니다. 그렇게 모은 것을 이제 쓰시는 것 같습니다.
고백 성사를 보러 성당에 들렀다가 신부님의 권유로 ´병자 성사´까지 받고 돌아오셨습니다.
저는 일을 해야 해서 동행하지 못했고 이제 겨우 성당에 다닌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며느리하고 함께 다녀오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쳐 주는 일은 그처럼 고요한 속에 전해지며 또 자신이 직접 보여주는 일인 듯싶습니다.
어머니는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일러주는 일 없이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며느리에게 전해주신 것 같습니다.
아침 묵상을 쓰는 공간을 ´바람 담은 손수건´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저 바람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주는 바람이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마음먹는 그 바람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다 마음에 듭니다.
그 바람을 담은 손수건을 갖고 다니면서 건네주고 싶은 생각에 묵상을 적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