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정겹고 반가우면서 품이 넓고도 높은 일입니다.
직원을 잘 뽑은 사장님은 그만큼 성과를 얻게 되고, 리더를 잘 선택한 사람들은 그와 함께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우리말 ´보다´는 하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그의 수고로운 일상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일, 그것부터가 의미 있습니다.
시계, 신문, 영화, 단어 모든 것들을 눈으로 봅니다. 그러다가 맞선도 보고, 아이도 봐줍니다.
살면서 답답할 때 사람들은 사주를 보러 가기도 하고 시험도 잘 봤냐고 묻습니다.
일을 본다고 그러면서 화장실에도 다녀갑니다. 어떤 사람은 말끝마다 끝장을 본다며 본때를 보여주겠다고도 합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술상도 자주 보셨습니다. 일찍 며느리를 보는 친구도 있으며 이익도 보고 재미도 봤다고 좋아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환자도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맛 좀 봐 달라는 말도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보는 일이 정말이지 지천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자리가 벌어진 판에 대충이라도 더 훑어보겠습니다.
상대방의 흉도 보고, 단점이나 약점도 봅니다. 물론 그것도 기회를 봐가면서 해야지 무턱대고 그랬다간 일이 커집니다.
집이나 땅을 보러 다니는 분들은 좋겠습니다. 저는 시장만 봐도 좋습니다.
사람을 본다는 말도 다시 써봅니다.
사람을 보고 결혼해야지 재산을 보고 결혼해서야 되겠냐는 말이 색이 바랜 흑백사진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본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일은 ´보면서´ 다 지나가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잘 본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빠뜨릴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얹혀서 말씀드리면 아마 ´눈´을 흐르는 맑은 물에라도 깨끗이 씻어 다니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열거했던 것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나오는 것들은 사실 끝이 없습니다.
제가 ´보다´는 말의 진정한 힘을 느끼는 곳이 여기입니다.
어떤 말 뒤에서 보조를 하는 동사 ´보다´가 있으며 그런 식으로 형용사 역할도 합니다.
먹어 보다, 달려 보다, 입어 보다, 들어 보다, 한 번 해보고 싶은 것들에도 그 말은 따라붙습니다.
읽어도 보고 맞아도 보고 만나도 본 것들을 경험이라고 합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오래 살고 보면, 이럴 때 쓰는 ´보다´는 어딘가 뒤끝이 물러진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동사나 형용사 뒤에서 추측을 하는 ´보다´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열차가 도착했나 보다, 감기가 들었나 보다, 그 둘은 연인인가 보다, 어딘가 멀리 가나 보다. 등등
이것은 또 어떻습니까. 추측에도 걱정을 담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도 ´보다´는 쓰입니다.
야단맞을까 봐, 배고플까 봐서, 사고라도 났을까 봐, 일상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것들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본다´는 것은 눈이 하는 일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손으로도 보고 모든 감각을 통해서 또 보고 이도 저도 소용없을 때는 마음이 나서서 봐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게 많이 어렵습니다.
그것만 할 줄 알아도 세상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살이를 어둠 속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밥을 먹여줘야 살 수 있는 긴 팔을 가진 사람들처럼 내 발밑을 비추는 등불이 아니라 상대의 발밑을 밝히는 역할을 부여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주변을 밝혀가다가 온통 환해지는 순간이 내가 밝아지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까지 가는 길이 멀고도 오래 걸린다고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말하지 않으셨던가요.
마음으로 보는 일이 어디 쉽겠습니까.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 루카 1:63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그의 아들을 알아보는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알아보는 아버지라...
너무 당연한 일이 나에게도 그만큼 당연했었는지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네 아버지였구나 싶어서 고마운 생각 49에 미안한 생각 51을 담은 눈으로 아침을 맞을까 합니다.
산이와 강이가 깨어나길 천천히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