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묵상을 받아보시는 분들 가운데에는 종교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마구 퍼 나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저부터 글이 홍수처럼 범람하는 곳을 피하는 편입니다. 좋은 것들이 가득하고 넘치는 곳은 조용히 지나가고 싶어 집니다. 그들의 축제에 저까지 볼거리로 나서고 싶지는 않습니다. 영양, 정보, 비타민, 행동, 진료, 편리, 관계, 자의식까지 모두가 과잉으로 치닫고 있는 시대는 아닌가 합니다.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습을 바꿔가고 있습니다. 고독사 孤獨死라는 말은 정말이지 고독 苦毒하게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허기나 갈증이 사라진 듯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도사리고 있는 그것들은 신형 新型, 아니면 변이 變異가 되어 진화하고 있습니다.
건방지거나 외람 猥濫되어 기분에 맞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가 아침에 찾아뵙는 분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느낍니다. 누가 귀띔이라도 해줘서 아는 것은 아닙니다. 가만히 어떤 계기가 마련되어 이렇게 주고받는 일이 가능해진 사람들도 있으며 친구라든지 친인척과 같은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들도 여럿 있습니다. 모두들 수고롭다는 것입니다. 수고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고 그러시겠지만 수고하고 애쓰는 것이 저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오롯이라는 말이 이럴 때 적합할지 모르지만 제법 잘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가진 것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얼마나 좋은 학교를 다녔는지 얼마나 건강하고 유쾌하게 살아가는지와 상관없이 모두가 수고롭더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새벽에 적은 묵상을 전송할 때, 받는 이를 향해서 호흡이나 기운 같은 것들 - 그것을 염원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일이 커지는 듯하여 피하고 싶지만 그와 비슷한 것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 이 하나씩 모양도 예쁘게 비눗방울처럼 날아갑니다.
그때 제가 처음에 문 門처럼 앞에 써놓고 시작하는 말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오 18:19-20
- 찬미 예수님
이렇게 시작하는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종교가 다르고 종교가 없는 분들에게 종교가 있는 제가 건넬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인사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아침 묵상을 받아주시는 그분들이 고맙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는 것이 제대로 없어서 종교를 설명할 수도 없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그다지 없습니다. 늘 그렇듯 내 옆에 누웠었던 젊은 아빠를 위해서 적기 시작했던 그 마음과 자세로 전달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무슨 말이든 해달라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기를 저는 매일 아침 되뇌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뜻을 모르는 말이라도 그저 쓰여있길래 반복했더라는 말만 남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침에 물 한 잔씩 마신 것밖에 없는데 평생 감기에 걸리지 않더라고 한다면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사실 ´찬미 예수´라는 물로 속을 헹구고 정신을 맑게 하는 듯합니다. 덕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잘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도 이 공간을 통해서 전달받습니다. 웃으시겠지만 받는 이의 희로애락이 그날그날 전송됩니다. 마치 모스 부호처럼 뚜뚜뚜 소리 내면서 혈관을 타고 가다가 하나의 불이 켜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가볍구나, 오늘은 어제보다 어둡구나. 그동안 많이 쌓인 것을 부담스러워하는구나, 그래도 편안하게 보여서 다행이다....
대신 이런 것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정말 시간이 많구나, 대단하구나, 언제까지 계속할래? 같은 오묘한 감정들은 못 본 척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때도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저는 잘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요.
졸업이란 것도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할 때가 되면 밖에 것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내 안에 것들이 자랐다는 것을.
그러니 다른 세상을 소개해 주고 싶을 겁니다. 이 세계에서 배운 것으로 저기까지 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티켓을 구해주면서 등을 토닥거리는 것이 졸업인 것 같습니다.
그게 뭐라고,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꼭 한 입 더 먹이셨습니다.
그거 더 먹는다고 살찌는 일은 없는데 가끔 그 생각합니다.
어쩌면 한 입 더 챙겨줬던 그 덕에, 그 힘으로 여태껏 잘 지내온 것은 아니었던가.
그게 뭐라고 그러셔도 좋으니까, 자꾸 그러면서도 ´찬미 예수´라는 저 문 門을 만져보셨으면 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예수님이 웃으면서 반가워하실 것 같습니다.
고맙다며 수고로운 어깨를 쓰다듬어 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