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91

아침에,

by 강물처럼

어제 하루만 톡 떼어서 돋보기 같은 것으로 자세히 살펴본다고 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일이나 상황, 사람, 아니면 생각이나 공상, 말, 기타 등등 중에 어떤 것이 특별하게 남았을까요.


만약 그렇게 남은 것들로 삶이 채워지는 거라고 한다면 어제는 얼마나 모았던 하루였을까 싶습니다.



모두들 자기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원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듯합니다. 원의 크기는 다양하고 그것이 퍼져나갈 공간은 무한하지만 대부분 한 데 모여서 동그라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완성이면서 또 하나의 완성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방울 하나가 자꾸 뭉쳐지면서 물방울 그대로인 것처럼 말입니다. 한 사람의 모습 안에도 시간이 남긴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추억뿐이겠습니까, 뿌리가 땅속을 깊이 뻗어가면서 찾아낸 것이 과연 물뿐이었겠습니까. 땅속에서 지탱해 주면 하늘로 오르는 줄기며 가지, 잎들을 보면서 뿌리가 느꼈을 해방감을 떠올려 보신 적 있을까요.


어둡고 습한 곳에서 큰 돌을 휘감은 채 흙을 한 움큼 쥐고 있는 뿌리를 보면 초록도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색이 아닌 줄 다시 알게 됩니다. 예쁜 색 초록을 세상에 내놓는 그 수고로운 투쟁의 색, 뿌리가 어제도 우리들 안에서 찾아낸 것은 무엇이었던가요.


어떤 눈빛을, 어떤 음색 音色을 그 마음에, 그 말에, 그 동작에 올려태워 보내셨는지요.


오, 마이 갓!



´나는 영혼 위에 육신을 걸친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다. ´



조금은 경박할 수 있지만 하나의 생각이 줄을 타고 우연히 미끄러진 곳이 파티가 열리고 있는 연회장에 닿은 듯합니다. 우선 반가운 생각에 아는 체를 하고 싶습니다.


러시아 시인, 일찍 죽은 세르게이 예세닌의 저 말이 그 말, 뿌리와 같은 말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확실히 천부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푸른빛이 감도는 운명이 곁을 따라다닙니다.


저 같은 사람은 오십이나 넘어야 그 사람들이 스무 살에 가졌던 시선 視線, 리듬, 감각을 겨우 감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다.


백신을 먼저 맞는 사람이 있으면 가장 나중에 맞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지금은 하나의 천재와 범인 凡人, 있고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먼 훗날에는 같은 G 선상에서 하나의 곡을 완성시키는 음표로 만날 것을 확신합니다.


아무래도 신 神의 영역은 넓습니다.


그것은 나무들의 숲을 뛰어넘고 하늘도 여러 하늘을 헤아려야 하는 세계, 세계라는 말은 과연 그 세계를 담을 수 있을까요?



삶도 그렇고 글도, 사람도 여우도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합니다.


수미쌍관 首尾雙關으로 흐르면 눈이 편하고 자분자분한 맛이 있습니다.


´어제 하루´


어제 저를 통과해서 지나간 것들 중에 그것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싶어 하나 남겨놓은 것은 이것입니다.



´소금의 속성은 고요해야 한다. 짜고 향기로운 맛이 소금의 핵심부에 고요히 안정되어 있어야 하고,


어떠한 잡것도 거기에 섞여서는 안 된다.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는 햇볕의 것이다. ´ - 김훈, 자전거 여행 中



어디에 넣어서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요.


바로 먹을 수 있는 찌개나 계란 요리가 좋을까요, 오래 기다렸다 먹을 수 있는 간장이나 된장에 넣어둘까요.


저는 그 소금을 아침 묵상에 넣기로 했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 그 느낌으로 착착.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 7:13



맛이 어떤지요, 간이 맞는지 먼저 맛 좀 봐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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