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글자 그대로인 듯합니다.
사람 인 人.
도대체 저 모양을 보고 누가 사람이라고 불렀는지 다시 봐도 놀랍습니다.
사람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 저만큼 심플하면서도 깊이 있게 가르쳐주는 철학이 있을까 싶습니다.
꼭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 같으면서 이쪽에서 저쪽에 기대고 저쪽은 이쪽을 받히고 있는 것이 동시적이고 비율도 같습니다. 하나인 듯 둘이고 둘인 듯 하나인 것이 저 글자, 사람입니다.
손글씨라는 말은 따로 없었던 말입니다.
글씨는 모두 손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따로 손글씨라고 부를 것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글씨 잘 쓴다. 글씨가 예쁘다. 그런 식이었지 손글씨가 제법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가 생겨나고 키보드로 글씨를 쓰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연습장´ 이란 것을 쓰지 않습니다. 까맣게 써가면서 공부하던 옛날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연습장은커녕 필기를 하는 일 자체가 드뭅니다. 아이의 글씨를 가장 최근에 본 것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시면 아실 겁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글씨체는 어떤지 아시겠는지요. 저부터 펜을 잡고 글씨를 쓰는 일이 아주 드물어졌습니다. 감각이 어색해할 정도입니다. 그것을 아쉽다고 해야 할지 반겨야 할지 어중간합니다.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사람 : 인 人
그 말을 적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꾸준히 쓴다고 썼는데 필사를 하던 성경 책이 책상 위에 놓인 채 얼마 동안 지난 듯싶습니다. 세어보려고 해도 언제부터 그랬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물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날은 바빴다든지 다른 일이 있었다든지 분명히 깜박하고 쓰는 것을 잊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루나 이틀쯤 미루어도 괜찮겠다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게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일이 아니고 페이지를 펼쳐서 희미해진 시력으로 찾아가며 펜을 굴려 손으로 써가는 그 작업은 일부러 챙겨서 해야만 줄어드는 일 같은 ´일´입니다. 성경을 쓰다 보면 - 이것도 아마추어의 가벼운 마음 같은 것이지만 - 팔만대장경을 새기던 사람들의 손이 연상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 아니었을까 싶은 순간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써보고 싶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렇듯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만 멈추고 몇 날 며칠을 흘려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거기에 작용에 대한 작용이 없는 탓입니다. 내 작업을 받혀주고 따라와 주는 분신이며 나 자신이 되는 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삐침과 파임 그것이 서로 의지하면 사람 人이 되는 숭고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침 묵상이 멈추지 않고 오늘도 여기에서 거기로 날아가는 데에는 받는 사람의 힘이 받침으로 작용하는 덕입니다. 보는 사람 없이도 잘할 줄 알면 어른이고 성인입니다. 그런 것을 스스로 한다고 그러고 저절로 된다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의식적인 노력과 수고를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가고 싶다면 그래야 하고 그럴 줄 알아야 하는 것인데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길에 동행은 의지가 되기도 하고 그 덕에 살아가기도 합니다. 삶의 방법이며 답이 되는 것이 사람의 실천에 있다면 그 방법이자 답은 나와 동행하는 사람에게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인 듯하고 둘인 듯한 그 모습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 되게 하는 그 글자 같은 것 말입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 마태오 7:1
완벽한 존재에 대해 지난 토요일에 언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에 비춰보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집니다. 초라해서 숨는 사람이 있고 초라하니까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의식은 어느 쪽에서나 작용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야말로 그래서 심판하는 일이야말로 사람이 짓지 말아야 할 큰 잘못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도 위대하지 않은, 그래서 내가 덜 초라하게 해주는 내 동행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한 편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