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96

아침에,

by 강물처럼

상상 想像은 꿈같은 작업입니다. 흐름이 그것의 본성입니다.


흐를 줄 압니다. 물이 흐르고 바람이나 공기가, 시간이 흐릅니다. 시작과 끝이 없이 늘, 어디에서나 흐릅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상상이 있습니다.


창의 創意는 상상이 띄우는 것들입니다. 상상이라는 흐름 위에 떠서 가고자 하는 때에 가고자 하는 곳에 찾아가는 일입니다.


물이 없으면 배가 뜨지 못하는 것처럼 상상과 창의는 엄마와 자식 같은 관계입니다.


스승과 제자라고 해도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꿈을 꾸시고 그 꿈에 둥실 떠가는 배들이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사도가 되는 제자들.


교회 공동체와 신앙을 가진 이들의 표상 表象이 되어도 충분한 가치가 그것입니다.


교회가 꾸는 꿈은 흥미로웠습니다. 인상적인 도입부였습니다. 사람의 시선을 끕니다.


베드로 사도는 아시는 것처럼 ´자기부정´의 실현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일의 재현으로도 보입니다. 부끄러움, 아쉬움, 안타까움, 그리고 죄의식.


바다로 나서지 못하고 뭍에 갇힌 배는 갈 곳이 두 곳밖에 없습니다. 그곳이 어디겠습니까.


허술한 자기부정은 서툰 결말로 치닫습니다. 변화도 변혁도 생기도 없이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못하고 끝을 맺습니다.


폐선 廢船이 되지 못하고 패 敗 하고 마는 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아가느냐, 머무느냐.


바다에 나가려는 자는 굳건해야 합니다. 철저한 자기부정으로 완만한 유선형의 곡선을 맺은 배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사도들은 그와 같이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태오 16:16



사람들이 와서 물었을 것입니다.


무엇이냐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르느냐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할 말이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물 위에서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종종거리는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종교는 물입니다. 모두를 띄울 수 있는 흐름입니다.


그것은 상상이며 코끼리입니다. 상상은 허구로만 이루어진 꿈이 아닙니다. 각양각색의 꿈이 상상으로 펼쳐지고 그것은 실현됩니다. 작품은 그렇게 믿는 데에서부터 만들어집니다. 물 위를 지나는 배들은 하늘에도 둥둥 떠다니는 꿈을 꿉니다. 영혼이 꾸는 꿈, 그 바다 같고 하늘 같은 공간이 종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커다란 절구공이라며 또는 굵은 밧줄같이 생겼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평상이나 장독이라며 고집하는 사람들과 다툽니다.


코끼리는 거기 그대로 얌전히 있는데 말입니다.



나는 코끼리를 그려내고 싶습니다.


내가 그리는 코끼리는 무엇을 닮았을까요. 나를, 그를, 아니면 다른 코끼리들을 그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본 적 없는 그것은 무엇을 닮았을까요. 두근두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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