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때보다 늦었습니다.
미처 아침밥을 지을 시간이 없겠다 싶으면 누룽지를 끓이는데 오늘 아침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오면 농담 삼아,
´산속의 절간을 맘에 들여놓은 듯이 절반쯤은 적막하게´라고 말합니다.
따로 더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제일 간결한 대답입니다.
적막하게라는 저 표현이 어떻게 들릴까 싶습니다.
저는 마음에 드는 것은 물론이고 옳다는 느낌도 갖고 있습니다.
쉬운 것 같아도 쉽지 않은 것이 흥미롭고 어려운 듯하며 어렵지 않은 것들을 맛보기 좋아합니다.
고상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닌 좀 유별난 것이라고 불리는 편을 차라리 선호합니다.
적막한 것들을 차곡차곡 개어놓는 시간들이 사람에게 얼마나 필요했던가를 꽤 늦게 깨달은 셈입니다.
어제는 그 적막함을 깨고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산에 사는 친구와 그 친구의 아내까지, 셋이서 공원에 앉아 밤공기를 들이켰습니다.
오래된 친구는 장소 선택에서부터 자유롭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보러 오고, 보러 나가는 일이 흔연스럽습니다. 그 마음이 바로 대접 待接인 듯싶습니다.
아무 데나 앉아서 여름밤을 바라보며 사는 일들을 읊어보는 일.
저는 내 적막함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기꺼이 환속 還俗 하여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고 가족이 됩니다.
그러니까 친구이면서 친구의 아내가 되고, 친구 남편이면서 친구인 두 사람과 있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립니다.
그들의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꽤 지났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습니다.
엊그제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 머물고 계시는 내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그분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허리가 아프다는 말과 치매, 그리고 서울 병원, 거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었던 말들이었습니다.
나이 들면 그렇게....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며 헤어졌었는데 어제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냥하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유쾌하게 말을 건네시던 그 어머니가 루게릭 병을 앓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의사들도 쉽게 알아보지 못한 병, 신이 내린 가장 가혹한 병이라고 하는 그것을 옆에서 듣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루게릭 환자가 쓴 에세이를 한 권 다 읽고서도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실감되지 않았었는데 어제는 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금방 잠들지 못하고 들썩였던 것도 아마 그래서 그랬을 것입니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그런 말들이 루게릭 환자들 대화방에서는 빈번하다고 합니다.
그게 얼마나 참담한 말인지 저는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내 적막함은 하나의 은유에 지나지 않습니다. 삶은 정말이지 가볍지가 않습니다.
가벼워야 답을 쓸 수 있을 텐데 연필을 드는 것도 종이를 마련하는 일도 힘이 듭니다. 힘에 겨운 인연과 힘이 부치는 시간들로 촘촘히 짜인 그것을 밟고 서 있는 우리는 많이 무겁습니다.
어머니의 숨이야말로 적막한 호흡입니다. 그 숨소리 하나하나가 삶이 끌고 가는 뒷모습 같습니다.
유머도 사랑도 종교도 인연도 자식도 둥그렇게 둘러서 한 사람의 숨소리를 위로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은 늦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마저 못 본 것들을 살피기로 하고 아예 천천히 마음을 먹습니다.
저는 누룽지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