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98

아침에,

by 강물처럼

격언이나 속담은 오랫동안 사람의 삶을 도와왔습니다.


세상살이에 엉거주춤하거나 허우적댈 때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인간적이며 종교적이고 거기에 감동까지 곁들인 제가 아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쉬워서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누구나 아는 말입니다.


아이들과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한 번씩 꺼내어 들려줍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


´自求者福, 天助者助者 자구자복, 천조자조자´



세상은 어느 순간 정확히 두 갈래로 나눠선 듯합니다. 성장을 하더라도 폭풍 성장을 하는 쪽이 있으며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해가며 살아간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말을 책에서만 봤는데 지금, 특히 ´돈´에 관한 시대적 변화가 급격하게 몰아치고 있는 것을 저 같은 시골 무지렁이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압박을 느낄 정도가 되었으니 곧 정치며 문화 따질 것 없이 사람 사는 일은 모두 그것 하나로 해결되거나 그것 하나로 무너지는 일을 목격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어떤 말이든 가져다 쓸 것입니다. 투자하라, 과감하라, 던져라.


하지만 ´스스로 돕는다´는 말처럼 아름다운 교훈이 이익 하나만을 좇는 데 쓰이기에는 그 가치가 너무도 이상적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완성시키는 거룩한 말인데 그때를 위해서라도 아껴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돕는다는 말을 기도한다는 말로 전 傳 하자고 그러면 여기에서부터 설득력이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바로 그 지점이 ´의인 열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지평선 같은 풍경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돈이 돈을 버는 흐름을 보면서 백 년 전에 있었던 사람들의 위치 변화를 떠올려 봤습니다.


땅에서 난 것으로 먹고사는 일이 전부였던 시대에 처음으로 땅을 벗어나 먹을 것을 얻어냈던 사람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그것도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땅의 발견이었을까. 아니면 코인이나 부동산을 바라보는 우리들 시선을 더 닮았을까.



노력해서 돈을 번다는 전통은 변함이 없지만 ´노력´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노력한다는 말을 ´스스로 돕는다´는 말로 아이들에게 들려줍니다. 주식 정보만 찾아다니는 떼를 보고 있으면 몸서리가 쳐지는 것은 아무래도 저 자신이 덜 경제적인 탓일 겁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부동산 작전을 펼칩니다. 그 작전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작전에 숟가락을 얹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건은 그대로인데 가격만 요동칩니다. 누군가는 허구로 쌓은 이익으로 비싼 밥을 먹는 재미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면서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소득이라고 자부합니다. 노력은 왜곡되거나 비틀어지고 있습니다. 아니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하늘이 돕는´ 그 노력이 좋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려야 한다는 주의입니다. 그것마저도 ´네 하늘´과 ´내 하늘´로 구분 지어질까 봐 미리 겁이 납니다.


´내 하늘은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아´라고 외치는 하늘만큼 높아진 자본이 저기 보입니다. 하늘이 되어가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살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하는데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지키라고 당부하겠습니까.


눈치껏 살라는 말이 고작 전부라면 우리는 잘못 산 것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공정´을 무기로 삼고 떠들었던 한 시절입니다. 과연 우리는 스스로에게 공정했었는지 먼저 묻고 그리고 누구에게라도 물어야 했습니다. 아무도 자유롭지 못한 그 말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기력한지 살폈어야 합니다. 그것이 딜레마입니다. 내가 뒤떨어지는 것은 참을 수 있겠는데 내 자식이 나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사람을 괴롭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내 자식은 나보다 더 든든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마태오 9:4-5



이 말씀이 편하게 속으로 접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은 말일 뿐이고 마음이란 것도 지나가면 그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때가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달마산을 내내 걸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쉬운지 걸으면서 묻고 답하고 또 묻고 답하다가 하루를 다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7월에는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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