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19

아침에,

by 강물처럼

좀 웃긴 구석이 있는 게 접니다.


아침마다 이런 편지를 들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살짝 각도를 틀어 보면 웃긴 일이기도 합니다.


하긴 웃긴다는 말도 여러 종류로 해석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결국 ´웃기는´으로 끝나는 극 劇을 선호합니다. 그것이 블랙 코미디가 되더라도 제 별칭은 ´웃기는 놈´이었으면 합니다. 웃음이 사라져 가는 것을 매일 목격하는 일이 인생이 가진 또 다른 얼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잘 웃기는 사람이 좋고 무엇보다도 잘 웃는 사람에게 반합니다.


콧수염, 모닝코트, 지팡이 - 누군지 금방 아시겠지요.


´모던 타임즈´를 제작했던 찰리 채플린의 심장에서 쏟아내는 온기 같은 것을 어딘가에서 얻을 수 있다면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가보고 싶습니다.


가끔 TV 화면에서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사람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뻗으며 배를 땅에 깔고 다리를 쭉 편 후 머리를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어떤 철학이나 종교심 같은 것이 전혀 없이 그냥, 정말이지 아무 이유 없이 그래 보고 싶습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가는 거, 마음 가는 데 인연이 생겨나는 일은 흔하고도 쓸쓸한 일인 듯합니다.


하지만 삶이 끓여대는 그것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는 우리가 가진 말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팔도 다리도 없이 겨우 머리 하나 가지고 쓰는 언어는 몸부림칠 뿐 한 걸음도 여기에서 저기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방법은 오체투지로 그리고 표현은 웃음으로.

제가 구현하는 실험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지극한 정성은 거기에 있는 일입니다. 웃음 가운데 머물며 스스로 웃는 일, 웃음이 되는 일.


동정 同情의 포인트는 가엾게 여기는 것에 있지 않고 자기 일처럼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자기 일처럼 바라볼 때 웃음도 울음도 제 색깔대로 나부낍니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어울립니다. 다만 무엇으로 끝맺을까 하는 일이 사람에게 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웃기로´ 합니다. 계속 울고 살았더라도 웃기로 마음먹습니다. 또는 웃고 살았더라도 한 번 더 잘 웃어볼 일이라고 마음을 정합니다.


사람은 자연 앞에서 감동하는 존재입니다.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있다면 아마 그쯤에서 흐르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물인지 마음인지 하늘인지 모르지만 흐르기만 해도 그게 어디냐며 다시 감동합니다. 그것이 감사 感謝가 되면 밥이 지어집니다. 내 삶이 짓는 밥으로 세상에 한 끼 대접하는 일이 결국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됩니다. 그 밥상에 지긋이 앉아 소개하는 일이 제가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이 나물은 어디에서 구했으며 맛이 어떻고 그것이 어디에도 좋다며 권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자연도 사람을 보고 놀랄 때가 있을 거라고 믿는 일, 그것이 제가 맛 내고 싶은 밥상입니다.



혼자 산길을 거닐다가 길이 곧게 난 곳에 다다르면 연습을 합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걷습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의 절반에도 한참 미치지 않는 곳에서 눈을 뜨고 맙니다.


눈 없이 걷는 거 하나도 도무지 불안한 그 사람이 됩니다. 떠드는 일이야말로 그런 줄 알아야 하는데 정말이지 무식해서 용감합니다.


웃음을 방향 삼아서 가봐야겠습니다.


각도를 놓쳤거나 길이 서툴렀더라도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야겠습니다.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마태오 13: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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