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도토리 두 알 / 박노해
산길에서 주워 든 도토리 두 알
한 알은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
한 알은 크고 윤나는 도토리
나는 손바닥의 도토리 두 알을 바라본다
너희도 필사적으로 경쟁했는가
내가 더 크고 더 빛나는 존재라고
땅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싸웠는가
진정 무엇이 더 중요한가
크고 윤나는 도토리가 되는 것은
청설모나 멧돼지에게나 중요한 일*
삶에서 훨씬 더 중요한 건 참나무가 되는 것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 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
울지 마라, 너도 묻혀서 참나무가 되리니
자연의 힘이 아닌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또는 그런 것을 인위적 人爲的이라고 정의한다.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아니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또는 그런 것은 자연적 自然的이라고 사전에는 쓰여있다.
그렇다면 인위적이란 말은 이 땅에 사람이 있고 나서부터 생겨난 말이다.
사람은 그만큼 특별한 존재인가.
그리고 인위적이란 말은 과연 자연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을까.
산다는 일은 우연과 필연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일 같다.
우연 아니면 필연밖에 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가 걸어볼 수 있는 것은 어디라는 말인가.
그대는 어느 세상을 걷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전에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으로 이 세계가 나뉜다면 우연과 필연은 어디에 그려 넣어야 마땅할까.
많이 어려운 일 같아 보이면서도 정리를 요구하는 문제임은 틀림없다.
나는 우연의 결과인지, 필연의 산물인지 그것은 꽤 중요한 물음이다.
물음에는 답이 감춰져 있는 것이니까 어려워도 계속 물어보면서 가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지는 않는다.
그중에 '어떤'사람과 우리는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따른 부속 행위를 가능한 성실히 수행하려 한다.
혈액형이 O형인 사람이 콜레라에 더 잘 걸린다는 사실을 과학이 밝혀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금 혈액형 A를 가진 사람들은 더 불안할지도 모른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훨씬 많다는 보고서는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과연 A형인 나는 지금을 우연하게 마주친 많은 사람들처럼 대하는 것이 옳은지,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예정된 하객처럼 나서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나에게 속한 자연적인 사실과 내가 할 수 있는 인위적인 것들이 나를 우연으로, 혹은 필연으로 이끌 것이라는 것이 안갯속에서 내려보는 풍경 닮았다.
<나는 작고 보잘것없는 도토리를 멀리 빈 숲으로 힘껏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