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병방산 기슭에서 편지를 씁니다.
지리산 깊은 곳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동안 너 어떻게 이렇게 살았느냐는 듯이 혼내는 것이 있습니다.
순도 백에 가까운 맑은 공기 입자들이 미세 플라스틱에 어지러워진 내 몸속을 흔들면서 깨울 때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내가 밖에서 너무 나간 만큼 공중에 띄우고서 산속 공기가 정신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산 기운 같은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그게 살짝 다른 것을 알겠습니다.
여기는 잎이 넓은 활엽의 냄새가 납니다. 포근하고 정답고 그러니까 호흡을 불어넣어 주는 기운입니다.
정선 旌善이란 이름처럼 착함을 드러내어 그것으로 사람 사는 것을 돕는 풍경 속에 앉아있습니다.
새벽닭이 오래 울면서도 성가시지 않았습니다.
아침 안개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산골 마을을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생각을 잊었습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아침에는 무엇을 먹을 것인지, 집이 어디인지도 잊을 듯싶었습니다.
산비탈에 넓게 펼쳐진 고추밭과 옥수수밭이 소곤거리며 흔들렸습니다.
오늘도 하루 쨍하고 뜨겁겠다며 저희들끼리 아침을 챙기느라 부산해 보였습니다.
잘 살아라, 잘 살아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아.
개미들은 또 어찌나 통통한지요.
끝없이 부지런한 개미들에게 정선 땅에서 오랫동안 눈맞춤 했습니다.
나는 개미로소이다. 나는 개미로소이다.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마태오 13:56
거기에 가볼 생각입니다. 원빈 하고 이나영 씨가 결혼했다는 곳.
어쩌자고 서울에 있는 근사한 결혼식장을 놔두고 거기까지 와서 결혼을 했는지,
그들의 마음을 어딘가에서 찾아볼 생각입니다. 일종의 보물 찾기가 될 것 같아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흔한 것들과 그 흔한 것들이 가진 색깔, 그러니까 여름날에는 노란 달맞이꽃이 되고 사람 사이에서는 안색 顔色, 얼굴빛이 될 것입니다. 한 번에 많은 이야기들을 전하는 그 감정과 관계와 인연을 담은 색을 좋아합니다.
아니, 그 색을 자꾸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다니는 것도 같습니다.
여기에서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평화를 전합니다.
거기에서 이곳으로 사랑을 보내주신다면 정선에 가득 퍼뜨리고 돌아가겠습니다.